한국의 인구 위기는 바야흐로 세계적 관심사다. 2300만 구독자를 가진 독일 유튜브 채널 ‘쿠어츠게자크트’가 “한국은 끝났다”고 단언하는 영상을 내놓는가 하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차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지적하며 “인구 붕괴”를 조롱했다. ‘인류 사멸’이 ‘밤잠 못 이루게 하는 걱정거리’라며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처럼 짧은 기간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극적으로 진행된 국가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는 전 세계가 주시하는 거대한 사회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인구 감소가 긍정적일 수 있다’는 시각을 일본 연수 시절이던 2004년 한 여론조사 기사에서 처음 배웠다. 저출산 고령화로 1억2000만 명대인 일본 인구가 2070년이면 7000만 명대로 줄어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별문제 없다’는 반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인구가 줄면 경쟁이 줄고 쾌적해진다’거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갈 것’,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 같은 이유가 거론됐다. 당시 일본 고령화율은 19.5%, 출산율은 1.29명이었다. 발전도상국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인구 증가=경제성장’을 상식으로 알던 기자로서는 문화충격이 컸다.
한국은 정말 끝났나
물론 일본에서도 인구 위기는 큰 걱정거리다. 사회 원로들이 모여 인구전략회의를 구성하고 인구 100년 대계를 짠다며 머리를 맞댄다. 다른 쪽에선 낙관적 의견을 내놓는 경제학자도 상당수 있다. ‘인구 감소 사회에서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생산성이 상승하며 여성 및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로 경제가 한층 발전할 수 있다’(‘인구 감소의 경제학―저출산 고령화가 일본을 구한다’)거나 ‘고령자의 엄청난 자산이 세상에 풀려 경기가 활성화될 것’(‘초고령사회이기에 급성장하는 일본 경제’)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구 감소를 감내하되 4차 산업혁명과 로봇,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초고령사회의 신기원을 열자는 유의 관점(‘진짜 일본 경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처음 대규모 인구 감소를 경험하는 선진국으로서 그 효시가 돼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읽혔다.
인구가 줄어도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출산율은 전 세계에서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속도와 밸런스다. 정현숙 방송통신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20∼2050년 생산연령인구는 한국에서 1319만 명(2020년 대비 64.7%), 일본에서 1969만 명(〃 73.8%) 줄어든다. 같은 기간 고령 인구는 한국에서 1085만 명(233.1%), 일본에서 286만 명(107.9%) 늘어난다. 한국에서 30년간 생산연령인구 1319만 명이 줄고 고령 인구 1085만 명이 늘어나는데, 새롭게 고령자로 편입되는 인구가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1700만 베이비붐 세대의 역할
그래서 ‘발상의 전환’ 시선으로 한국을 본다면 170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74년생)가 많은 키를 쥐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그 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인류다. 고학력에 경제력을 갖췄고 나이보다 건강하다. 이들이 무기력하게 부양받는 쪽이 아니라 생산인구 쪽에 머물면서 위아래 세대를 이어줄 필요가 있다. ‘마처세대’, 즉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서 부양받지 않는 ‘첫’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한국의 정체성을 지속 가능한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책임이 있다.
머스크는 지난해 10월에도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단기적으로 AI, 장기적으로 세계 인구 붕괴”라며 “인류는 그런 변화에 대응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누군가 나서서 인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압축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이 그 길을 찾아낸다면 이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자 세계사에 남을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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