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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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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을 짓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5〉

    저녁을 짓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5〉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멸하…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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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4〉

    고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4〉

    내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한 간(間)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내고단한 고기와도 같다.―김광섭(1905∼1977)1938년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김광섭 초기 시의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100년이 되었…

    • 202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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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봄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3〉

    긴 봄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3〉

    어여쁨이야어찌꽃뿐이랴눈물겹기야어찌새 잎뿐이랴창궐하는 역병(疫病)죄에서조차푸른미나리 내음 난다긴 봄날엔……숨어 사는섧은 정부(情婦)난쟁이 오랑캐꽃외눈 뜨고 내다본다긴 봄날엔……―허영자(1938∼ )10년 전 이 칼럼을 처음 맡았을 때 작은 텃밭의 관리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꽃씨…

    • 202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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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2〉

    나 자신을 기리는 노래[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2〉

    (생략)설거지통 앞하얀 타일 위에다밥그릇에 고인 물을 찍어시 한 줄을 적어본다네모진 타일 속에는그 어떤 암초에도 닿지 않고 먼 길을 항해하다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방주가 있다눈물로 바다를 이루어누군가가 방주를 띄울 수 있도록 하는 자에게는복이 있나니,혼자서 노래를 부르며 우는 자…

    • 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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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급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1〉

    취급이라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1〉

    (생략)몇 년 만에 미장원엘 가서머리 좀 다듬어 주세요, 말한다는 게머리 좀 쓰다듬어 주세요, 말해 버렸는데왜 나 대신 미용사가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잡지를 펼치니 행복 취급하는 사람들만 가득합니다그 위험물 없이도 나는여전히 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하지만당신의 세계는어떤 빗소리와 작약을 …

    • 202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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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할 짓[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0〉

    못 할 짓[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0〉

    느그 아부지는 요즘 날마다 메뚜기를 잡아다 잡숫는다배추밭으로 논으로 한바퀴 돌면 꽤 잡아 오시거든다리 떼고 나래 떼고 달달 볶아서 꼭꼭 씹어 잡숫는다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는데난 안 먹어, 못 먹어고 볼록한 것도 눈이라고 잡으려고 손 내밀면 어쩌는지 아냐벼 잎을 안고 뱅글뱅글 뒤로 …

    •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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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9〉

    숲[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9〉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정희성(1945∼ )격조 있는 시인이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 20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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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귀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8〉

    어떤 귀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8〉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먼지만 뿌옇게 쌓여 있는데,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 자는데,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이마 위에 이고 온별…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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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7〉

    첫사랑[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7〉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봄이면 가지는 …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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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1[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6〉

    물 1[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6〉

    어둠 속에 엎드려물소리를 듣는다사람들 소리는 사라져도우리는 아직도물소리로 살아서허옇게 소리치고 있다.누구인지,엎드린 사람에게는물소리가 들린다.휘어지지 않기 위하여휘어지는 밤가슴으로 듣는 물소리―권달웅(1944∼ )1984년에 나온 평론집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에서 김현 평론가는 이…

    •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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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만진 슬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5〉

    오래 만진 슬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5〉

    (생략)갑자기 찾아온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그리하여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그렇지 아니한가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이문재(1…

    • 202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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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물이 되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4〉

    우리가 물이 되어[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4〉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중략)그러나 지금 우리는불로 만나려 한다.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저 불 지난 뒤에흐르는 …

    •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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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하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3〉

    또 하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3〉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빨래를 해 널었다바쁠 일이 없어 찔레꽃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텃밭 상추를 뜯어 노모가 싸준 된장에 싸 먹었다구절초밭 풀을 매다가 오동나무 아래 들어 쉬었다종연이양반이 염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가고 있었다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박성우(1971∼ )…

    •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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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2〉

    새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2〉

    겨우내 외로웠지요새 봄이 와 풀과 말하고새순과 얘기하면 외로움이란 없다고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모두 다 형제라고형제보다 더 높은어른이라고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마음 편해졌어요축복처럼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김지하(1941∼2022)김지하 시인의 새봄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시는…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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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 앞 맑은 새암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1〉

    마당 앞 맑은 새암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91〉

    마당 앞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저 깊은 땅 밑에사로잡힌 넋 있어언제나 먼 하늘만내려다보고 계심 같아별이 총총한맑은 새암을 들여다본다저 깊은 땅속에편히 누운 넋 있어이 밤 그 눈 반짝이고그의 겉몸 부르심 같아마당 앞맑은 새암은 내 영혼의 얼굴―김영랑(1903∼1950)나는 ‘영랑’이라는 …

    •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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