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헌혈자의 날 기념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 광장의 이동식 헌혈차량에서 헌혈하고 있다. 뉴스1
“굳이 칼로 무 자르듯 70세 미만으로 연령 제한을 둘 필요가 있을까요.”
지난 26년 동안 478번 헌혈한 오영 씨(74)는 ‘헌혈 정년’에 대해 이렇게 의문을 표했다. 오 씨는 1999년부터 정기적으로 헌혈했다. 2주에 한 번 헌혈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2020년부터는 연령 제한에 걸려 헌혈을 중단했다. 오 씨는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 관리를 꾸준히 했다. 헌혈이 건강을 유지한 비결 중 하나”라며 “헌혈 연령 제한이 완화된다면 당장 헌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70세 이상 ‘고령자 헌혈’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산, 고령화로 헌혈 가능 인구가 급감한 데다 헌혈 연령 제한의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봐서다. 전문가들은 헌혈 가능 연령 상향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정부, 헌혈 정년 완화 연구용역 발주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올 4월 현재 70세인 헌혈 상한 연령 기준의 적절성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 등을 마련할 연구용역 ‘헌혈자 선별 및 혈액검사 적격 기준 개선 방안 마련 연구’를 발주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헌혈 연령 제한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보고 구체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1년 혈액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정될 때 헌혈자 건강을 고려해 ‘64세 이하’만 헌혈하게 했다. 당시 한국인 평균 기대수명은 62.7세였다. 이후 한국인 기대수명이 2023년 기준 83.5세로 높아졌지만 ‘헌혈 정년’은 2009년 ‘70세 미만’으로 한 차례 조정된 채 유지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헌혈은 285만5540건이었다. 이 가운데 35만4899건(12.5%)은 50∼69세 중장년층 헌혈이었다. 전체 헌혈에서 이 연령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1.2%에 그쳤으나 19년 만에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 “헌혈 연령 제한에 의학적 근거 부족”
저출산 고령화로 헌혈 인구는 줄고 있지만 혈액이 필요한 수혈 인구는 늘어 수급 불균형이 가속되고 있다. 헌혈은 한 번 참여해 본 사람이 다시 헌혈하는 형태가 많다. 이 때문에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연령 제한으로 헌혈하지 못하는 사람은 늘어난다.
주요 선진국은 연령 제한을 따로 두지 않는다. 미국은 헌혈 연령 상한이 없다. 영국, 호주는 젊었을 때 헌혈한 경우 연령 제한 없이 헌혈을 계속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66세 이상 고령자가 최근 3년 이내 헌혈 경력이 있고 의사 승인을 받으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헌혈 연령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헌혈 연령 제한의 경우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골수에 있는 세포가 헌혈 이후 혈액을 잘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모든 70대가 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대한적십자사 헌혈관리본부 관계자는 “건강한 중장년층 헌혈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헌혈 가능 연령 상한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연령 상한 조정은 헌혈자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의학적 분석과 근거에 기반해 신중히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