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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26일까지 26명이 사망했다. 산림청이 산불 통계를 시작한 1987년 이후 1989년 26명과 함께 역대 가장 많은 산불 재해 사망자다.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과 함께 안동, 청송에 이어 영양 영덕 동해안까지 번지면서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의성 산불이 경북 지역 4개 시군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25일 영덕군에선 80대 요양원 입소자 등 6명이 타고 대피하던 차량이 불길에 폭발해 3명이 숨졌다. 거동이 불편한 80대 노부부가 불길을 피하지 못해 집 앞에서 함께 숨지는 등 안동 4명, 청송 3명, 영양 6명, 영덕 8명 등 21명이 숨졌다. 26일 의성 산불 진압 중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도 사망했다. 22일 경남 산청 산불로 사망한 진화대원 등 4명을 더하면 사망자는 총 26명이다. 부상자까지 합치면 사상자는 50여 명에 달한다. 거듭된 진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산불은 강풍과 고온, 건조한 날씨 등으로 인해 무섭게 확산하고 있다. 영덕군 관계자는 “초속 최대 25m의 태풍급 강풍으로 산불이 청송에서 영덕읍 군청까지 4∼5시간, 해안까지 확산하는 데 대략 8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청송 영덕과 인접한 포항시 죽장면에서는 주민들에게 긴급대피 안내 문자가 발송되기도 했다. 산청 산불은 지리산국립공원 경계선 안쪽 200m까지 번졌다. 산림 당국은 방어선을 구축해 천왕봉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불이 확산한 곳에서 천왕봉까지 거리는 8.5km이다.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주왕산국립공원으로 번졌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한때 진화율 92%였던 울산 울주 산불도 이날 오후 진화율이 68%까지 떨어졌다.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인접한 경남 양산시까지 뻗쳤다. 시는 대운산 인근에 있는 민가와 사찰, 한방병원 등에 사전대피 명령을 내렸다. 불길은 부산 기장군 경계 지역까지 근접했다. 의성과 산청 산불로 이날 오후 4시 기준 주택과 공장, 창고, 사찰, 문화재 등 건물 317곳이 불에 탔다. 의성과 안동 2만2026명, 산청과 하동 1797명, 울주 언양 4628명, 온양 383명 등 2만8869명이 대피했다. 이날 산불 진화 헬기 추락 사고로 한동안 항공 진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진화대원들의 피로도 누적되고 있다. 26일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비가 시작됐고 27일 전국에 비가 예고됐지만 산불 확산세를 가라앉힐 수 있을 정도로 강수량이 많을지는 미지수다. 산림청은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강원지역으로까지 북상할 기세”라고 밝혔다.안동=장영훈 기자 jang@donga.com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시골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산불은 많이 겪었지만 이런 산불은 처음입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비닐하우스와 집을 덮쳤고 겨우 몸만 빠져나와 마을회관 쪽으로 도망쳤습니다.” 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마을회관. 주민 황호진 씨(66)는 불에 까맣게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화마에서 가까스로 대피한 사람들은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했다. 경북 의성 산불이 번진 석보면에서는 여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연기와 화염에 뒤덮인 마을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주민들은 “평생 처음 보는 산불”이라며 당시의 참혹한 순간을 전했다. 이번 산불로 전국 2만7000여 명이 대피한 가운데 경북 청송군 주민들도 가까운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청송군 파천면에 사는 김미외 씨(62)는 “창밖을 보니 약 200m 되는 거리 앞산에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고 있었다. 깜짝 놀라 내복 차림으로 뛰쳐나오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 25일 밤 산불은 산맥을 넘어 동해안 지역인 경북 영덕까지 번졌다. 불길을 피해 방파제로 달아난 주민들은 바다와 불길 사이에 고립됐다. 울진해양경찰서는 방파제와 해안가 등에 갇힌 104명을 구조했다. 구조에는 낚시어선 등 민간 선박도 동원됐다. 또 다른 마을에선 주민 9명이 한 차량에 타고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뜨거워진 도로 표면 탓에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이들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인근 하천에 몸을 던져 물속에서 버티다 지나가던 경찰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이번 화재에서 재난문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화재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불길이 이미 마을에 번진 뒤에야 도착한 곳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마을에서는 이장과 주민들이 동네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화매1리 이장 김모 씨는 “마을 여기저기 불이 붙기 시작한 뒤에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불길을 본 뒤 마을에 대피방송을 2번 했다”며 “마을에 불이 붙은 뒤에야 면사무소에서 직원의 대피 요청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도 “문자가 (화재가 덮친 후) 뒤늦게 많이 왔다. 문자보단 뉴스로 산불 소식을 주로 접했다”고 말했다. 의성군 관계자는 “(행정) 직원이 직접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올 상황이 못 돼 이장을 포함한 동네 지도자, 부녀회,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 대피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인들은 스스로 대피했다. 석보면에서 만난 김숙자 씨(84)의 경우 화재로 갑자기 정전이 돼 TV도 꺼져 약만 챙겨 혼자 걸어나와 동네 주민 차를 빌려 타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청송=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25일 오후 8시 반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산을 태우던 불길이 불과 15분 만에 중턱에 있는 요양원까지 내려왔다. ‘즉시 떠나라’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입소자 대부분이 거동 불편한 노인이라 걷거나 뛰어서 대피할 수 없었다. 한 명 씩 요양원 앞 차량에 모였고, 오후 9시경 정모 할머니(80) 등 입소자 4명과 요양원 여성 직원 2명을 태운 차가 요양원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주변은 이미 화마가 삼키고 있었다. 정 할머니 일행이 탄 차는 10분도 못 가 달려든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이 도로를 달군 탓에 타이어가 녹아 먼저 터졌다. 이후 차에 불이 붙어 폭발했다. 정 할머니 등 3명이 숨졌고 나머지 탑승자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보다 앞서 요양원을 출발해 인근 교회로 필사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입소자들은 정 할머니 일행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 “산불이 방사포처럼 마을로 쏟아져”25, 26일 이틀간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북동부 산불 현장은 ‘아비규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오원인 이장(57)은 마을 뒷산에서 붉게 밀려오는 화염을 보고 경악했다. 의성에서 번진 불이 안동을 거쳐 영양까지 덮쳤다. 불길은 산과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불과 5분 전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달라”는 군청의 연락을 받은 오 이장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이내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오 이장의 스마트 음성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한 주민은 “이장이 보낸 메지를 받고 집을 뛰어나왔더니 마당에 불이 붙고 있었다”고 말했다. 화매2리 50대 주민 김모 씨는 “불이 그냥 천천히 번지는 게 아니라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 방사정포처럼 불꽃 수 천 개가 미사일처럼 마을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 전기와 통신망도 끊겼다.같은 시간 옆 마을 삼의리 권모 이장(64)도 아내 우모 씨(59)와 함께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마을 도로는 이미 여기저기 날리는 불씨와 검은 연기 탓에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로 옆의 낙엽이 땔감 역할을 하며 타오르자 마치 도로는 용암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권 이장 부부는 인근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8시경 권 이장의 동생이 형님의 행방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 이장의 차는 도로변 배수로에 고꾸라져 검게 탄 채 발견됐다. 차가 향하던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라 삼의리 쪽이었다. 산불 연기 등으로 시야 확보가 안돼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 권 이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오 이장은 “아마 다른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다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슬퍼했다.● 희생자 대부분 거동 어려운 노인이번 화마에 스러진 희생자 상당수는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였다. 대부분 70, 80대로 집 안이나 마당, 도로에 불 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집 앞 내리막길에서 숨졌다. 이들은 산불을 피해 집을 나섰지만 거동이 불편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부부는 집에서 불과 도보로 1분 거리에 쓰러진 채 가족들에게 발견됐다. 장손 이모 씨(30)는 “산불이 난 뒤 교통도 통제돼 동네가 무질서 그 자체였다”며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에서는 70대 여성 지적장애인이 집을 나서지 못하고 불길에 숨졌다. 그는 요양보호자 도움이 없이는 밖에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웃 주민은 “대피 연락을 받았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 갇혀있었을 것”이라며 “그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서는 80대 남성이 산불로 무너진 자택에 매몰돼 숨졌다. 청손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집 안과 마당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중에 급속도로 번진 불길의 피해를 입으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불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집안이나 주변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시골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산불은 많이 겪었지만 이런 산불은 처음입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비닐하우스와 집을 덮쳤고 겨우 몸만 빠져나와 마을회관 쪽으로 도망쳤습니다”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마을회관. 주민 황호진 씨(66)는 불에 까맣게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화마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사람들은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경북 의성 산불이 번진 석보면에서는 여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연기와 화염에 뒤덮인 마을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주민들은 “평생 처음 보는 산불”이라며 당시의 참혹한 순간을 전했다.이번 산불로 전국 2만7000여 명이 대피한 가운데 경북 청송시 주민들도 가까운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청송시 파천면에 사는 김미외 씨(62)는 “창밖을 보니 약 200m되는 거리 앞산에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고 있었다. 깜짝 놀라 내복 차림으로 뛰쳐나오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25일 밤 산불은 산맥을 넘어 동해안 해안가 경북 영덕까지 번졌다. 불길을 피해 방파제로 달아난 주민들은 바다와 불길 사이에 고립됐다. 울진해양경찰서는 방파제와 해안가 등에 갇힌 104명을 구조했다. 구조에는 낚시 어선 등 민간 선박도 동원됐다. 또 다른 마을에선 주민 9명이 한 차량에 타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뜨거워지 도로 표면 탓에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도로 한복판에 멈춰섰다. 이들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인근 하천에 몸을 던져 물 속에서 버티다 지나가던 경찰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이번 화재에서 재난문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화재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불길이 이미 마을에 번진 뒤에야 도착한 곳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마을에서 이장과 주민들이 동네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화매1리 이장 김모 씨는 “마을 여기 저기 불이 붙기 시작한 뒤에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불길을 본 뒤 마을에 대피방송을 2번 했다”며 “마을에 불이 붙은 뒤에야 면사무소에서 직원의 대피 요청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도 “문자가 (화재가 덮친) 뒤늦게 많이 왔다. 문자보단 뉴스로 산불 소식을 주로 접했다”고 말했다.의성군 관계자는 “(행정) 직원이 직접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올 상황이 못돼 이장을 포함한 동네 지도자, 부녀회,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 대피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인들은 스스로 대피했다. 석보면에서 만난 김숙자 씨(84)의 경우 화재로 갑자기 정전이 돼 TV도 꺼져 약만 챙겨 혼자 걸어나와 동네 주민 차를 빌려 타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김 이장은 “가까운 집부터 어르신 집까지 찾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불러내 대피소로 이동시켰다”며 “눈 앞에 다니는 차를 무조건 붙잡아 세워두고 어르신들을 태워드렸다”고 말했다.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청송=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웃으며 귀촌했다가 울면서 귀도(도시로 돌아감)하게 생겼습니다.” 24일 오전 11시경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에서 만난 이상달 씨(69)는 검게 그을린 채 엿가락처럼 휘어진 농기구 창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고에 있던 경운기, 트랙터는 물론 1t 트럭도 완전히 불탔다. 의성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월리 전체 78가구 중 이 씨를 포함한 19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7년 전 이 마을로 귀농한 이 씨는 “이제 겨우 적응해 농사가 제법 잘되고 있었는데 자식처럼 가꿔 온 마늘밭과 복숭아나무가 숯 더미가 됐다. 반려견도 까맣게 불타 죽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166명 중 62명은 지역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가 산불 뒤 긴급 대피한 이들이다. 고령의 입소자들은 차가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기가 불편한 듯 수시로 자세를 고쳐 누웠다. 한 요양보호사는 “외부인들이 많이 오가는 대피소에서 장시간 머무르면 감염병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경남 산청에서도 이재민들의 속이 타들어 갔다.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서 만난 정종대 씨(70)는 “10년 전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이 재만 남았다. 건축비가 많이 올라 새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특산물인 곶감으로 유명한 시천면 점동마을 주민들은 불탄 감나무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배익선 이장은 “주민 90% 이상이 감 농사를 짓는데 전체 감나무 가운데 50%가량이 불에 타 올해 농사를 망쳤다. 산불이 꺼져도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남 창녕군 창녕국민체육관에 차려진 산청군 산불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는 유족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검은 상복과 흰 마스크를 쓰고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을 맞았다. 가장 먼저 헌화한 유족들은 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정 앞에 서서 눈물을 닦았다. 창녕군민 안모 씨(65)는 “희생자분과 전혀 인연이 없지만 같은 군민으로서 가족 같은 기분에 분향소를 찾았다”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까지 그분들이 대신 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산청=조승연 기자 cho@donga.com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경남 산청군 산불을 진압하다 목숨을 잃은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의 합동분향소가 24일 오전 창녕군 창녕국민체육관에 차려졌다. 아무런 인연이 없지만 “가족같은 마음에 달려왔다”는 일반 시민부터 중증장애인까지 사회 각층의 애도가 이어졌다.이날 오전 9시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은 희생자 유가족들은 검은 상복과 흰 마스크를 쓰고 고인을 추모했다. 일부 유족은 부축을 받고 헌화 이후 영정 앞에 기대 고개를 숙여 기대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연신 흐느꼈다. 오전 11시 30분경 합동분향소를 찾은 창녕군민 안모 씨(65)는 “희생자분과 전혀 인연이 없지만 같은 군민으로 가족같은 기분에 분향소를 찾았다”며 “우리가 해야하는 일까지 그분들이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창녕군장애인근로사업장에서 일하는 중증장애인 30여명도 이날 분향소를 찾았다. 이들을 데리고 분향소를 빠져나온 김득건 사무국장은 “오늘 아침에도 근로장애인분들과 묵념을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분향소를 방문하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함께 왔다. 장애인들이 받기만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무언가를 배풀고 싶다는 마음에 찾게 됐다”고 말했다. 창녕군 14개 읍면 자원봉사협의회는 24일부터 4일간 조문 입장, 퇴장 안내 등 자원봉사에 나섰다. 조점순 자원봉사협의회장(64)는 “매일 8명씩 4일간 32명이 교대로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라며 “(군에) 어려운 일이 생겼으니 안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자발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영남권 국가트라우마센터도 합동분향소에 부스를 설치해 일반인들에게 심리 상담을 지원했다.창녕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으로 200명이 넘는 추모객이 분향소를 찾았다. 합동분향소는 24일부터 27일까지 운영되며,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민간인 신분인 진화대원이 주로 하는 일은 잔불 정리인데, 왜 위험한 산 위로 올라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23일 경남 창녕군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경남 산청군 산불 진화 중 숨진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 등 희생자 4명의 유족들이 오열했다. 창녕군 소속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으로 활동하다 이번에 숨진 공모 씨(60)의 죽마고우인 차모 씨는 “어제 오전 9시 30분에 친구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면서 “전문가도 아닌 민간인이 대형 산불을 끄려다 변을 당했다”며 황망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만 태웠다. 우리나라에서 산불로 진화대원이 2명 이상 숨진 것은 1996년 4월 경기 동두천 산불 이후 29년 만이다.● 산불 사망자 유족-지인 “대형 산불에 무방비 노출” 공 씨는 창녕군에 살던 평범한 주민이자 2003년 출범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일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진화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다. 평시에는 산불 예방 활동을 하다가 불이 나면 잔불 정리, 뒷불 감시 등을 도맡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불이 나면 먼저 가서 진화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7만 원가량의 임금을 받는다. 거주지나 인근 지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일부 인원이 ‘산불광역관리대’로 차출되기도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평소 공 씨 같은 진화대원들은 분무기 물통 등을 들고 다니면서 잔불을 끄기도 했다고 한다. 공 씨 등 진화대원들은 22일 오전 11시경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불은 이미 소규모 화재가 아니라 대형 산불 수준이었다. 불을 끄며 서서히 올라가던 대원들은 갑자기 불어온 역풍을 타고 퍼진 불길에 포위됐고 그중 공 씨는 불을 피해 도망가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다친 공 씨는 이후 화마에 휩싸였다. 차 씨는 “화재 대응 전문가도 아닌 친구가 대형 산불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라며 “산청 다녀오면 ‘친구야 얼굴 보자’고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진화대에서 근무하다 이번에 숨진 이모 씨(64)의 친척도 “진화대원은 민간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민간인으로서 산불 감시하고 잔불을 끄곤 했던 것”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형님은 창녕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던 평범한 농부”라며 “큰아들을 귀하게 살피던 홀어머니는 쓰러져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소방관도 아닌데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 이번 산불로 숨진 공무원 강모 씨(33)의 친척 안모 씨는 “소방교육도 안 받은 말단 8급 군청 공무원을 마스크만 씌워서 8분 능선까지 보낸 건 죽으라는 것 아니냐.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불길로 향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 씨는 22일 진화대와 함께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당일 근무가 아니었지만 “진화대를 인솔할 담당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뒤 경남 창원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산청까지 가서야 아들의 변고를 들었다. 안 씨는 “그 집은 아들 하나였는데 대가 끊겼다. 이제 막 꽃피울 나이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강 씨가 숨진 22일은 그의 조카가 태어난 지 100일째였다고 한다. 노조 등에서도 초동 대처나 잔불 정리 등 비교적 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됐어야 할 민간인이나 비전문가들이 소방관도 아닌데 화재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23일 입장문에서 “대형 산불은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우선이고, 공무원 및 진화대는 큰 불길이 잡힌 후 잔불 정리 등에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초기 진화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투입하여 발생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창녕=조승연 기자 cho@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대전=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산청 다녀오면 ‘친구야 얼굴 보자’고 했는데…….”23일 경남 창녕군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산청군 산불 진화 중 숨진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산불예방진화대원 3명 등 희생자 4명의 유족들이 오열했다. 창녕군 소속 산불전문예방진화대로 활동하다 이번에 숨진 공모 씨(60)의 죽마고우인 차모 씨는 “어제 오전 9시 30분에 친구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며 “곧 보자고 했는데 변을 당했다.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며 황망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만 태웠다. 우리나라에서 산불로 진화대원이 2명 이상 숨진 것은 1996년 4월 경기도 동두천 산불 이후 29년 만이다.● 산불 사망자 유족-지인 “다녀와서 보자고 했는데”공 씨는 창녕군에 살던 평범한 주민이자 2003년 출범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일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진화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다. 평시에는 산불예방 활동을 하다가 불이 나면 잔불 정리, 뒷불감시 등을 도맡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불이 나면 먼저 가서 진화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7만 원 가량의 임금도 받는다. 거주지나 인근 지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일부 인원이 ‘산불광역관리대’로 차출되기도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평소 공 씨 같은 진화대원들은 분무기 물통 등을 들고 다니면서 잔불을 끄기도 했다고 한다.공 씨 등 진화대원들은 22일 오전 11시경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불은 이미 소규모 화재가 아니라 대형 산불 수준이었다. 불을 끄며 서서히 올라가던 대원들은 갑자기 불어온 역풍을 타고 퍼진 불길에 포위됐고 그중 공 씨는 불을 피해 도망가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다친 공 씨는 이후 화마에 휩싸였다.차 씨는 공 씨의 죽음을 황망해하며 “진화대원이 주로 하는 일은 잔불 정리인데 왜 위험한 산 위로 올라간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진화대에서 근무하다 이번에 숨진 이모 씨(64)의 친척도 “진화 대원은 민간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들이 산불 감시하고 잔불을 끄곤 했던 것”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된다”고 했다. 그는 “형님은 창녕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던 평범한 농부”라며 “큰 아들을 귀하게 살피던 홀어머니는 쓰러져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소방관도 아닌데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이번 산불로 숨진 공무원 강모 씨(33)의 친척 안모 씨는 “소방교육도 안 받은 말단 8급 군청 공무원을 마스크만 씌워서 8부 능선까지 보낸 건 죽으라는 것 아니냐.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불길로 향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 씨는 22일 진화대와 함께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당일 근무가 아니었지만 “진화대를 인솔할 담당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뒤 창원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산청까지 가서야 아들의 변고를 들었다. 안 씨는 “그 집은 아들 하나였는데 대가 끊겼다. 이제 막 꽃피울 나이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강 씨가 숨진 22일은 그의 조카가 태어난 지 100일째였다고 한다. 일각에선 초동 대처나 잔불 정리 등 비교적 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됐어야 할 민간인이나 비전문가들이 소방관도 아닌데 화재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23일 입장문에서 “대형 산불은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우선이고, 공무원 및 진화대는 큰 불길이 잡힌 후 잔불 정리 등에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초기 진화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투입하여 발생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창녕=조승연 기자 cho@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대전=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때아닌 3월 폭설에 전국 곳곳에서 추돌 사고가 잇따르고 전철 운행이 중단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18일 오전 10시 41분경 전남 보성군 남해고속도로 초암산 터널 인근에서 차량 41대가 눈 탓에 미끄러워진 도로에서 연쇄 추돌했다. 이 사고로 1명이 크게 다치고 11명이 경상을 입었다. 처음에 45인승 관광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진 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고 뒤따라오던 화물차가 이를 피하려 운전대를 꺾었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연쇄 추돌이 벌어졌다. 경찰은 갑자기 많은 눈이 내리며 눈길 추돌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기 안산시에선 폭설 여파로 1명이 숨졌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0시 45분경 안산시 상록구 수인로 편도 4차로 도로에서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20대 남성이 몰던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돼 운전자가 숨졌다. 경찰 관계자는 “노면이 약간 젖은 상태에서 미끄러진 사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 소태면에서는 오전 8시 18분 소태재 터널 출구 부근에서 눈길에 승용차가 미끄러져 9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1명이 경상을 입었다. 2분 뒤에는 충주시 창동교차로에서 제설 차량이 1t 화물차를 들이받아 2명이 경상을 입었다. 경기 의정부시에선 오전 5시 15분경 의정부경전철 모든 구간에서 열차 운행이 멈췄다. 선로 신호기에 눈이 쌓인 것이 운행 중단의 원인이었다. 의정부경전철은 운행 중단 2시간 10분여 만인 오전 7시 25분부터 정상적으로 운행을 재개했다. 강원 평창군 영동고속도로에선 오후 3시 14분경 차량 8대가 추돌해 1명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6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경찰은 앞서 가던 차량이 눈길에 미끄러진 것을 뒤따르던 차량들이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강원도는 폭설로 교통로도 일부 마비됐다. 고성군 대진리∼마달리, 거진뒷장해안도로가 전날부터 이틀째 통제됐고,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등 4개 국립공원의 67개 탐방로도 통행이 제한됐다. 원주발 제주행 여객기도 1회 결항됐다. 서울에서도 폭설로 인해 곳곳에서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6시 18분경 서울 내부순환로 성산 방향 정릉터널 입구에서 차량 간 추돌 사고가 생겼고, 6시 36분경에는 성수대교 남단에서 북단으로 가는 차도에서 승합차 1대가 눈길에 미끄러져 중앙난간을 들이받았다. 두 사고 모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보성=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경기=이경진 기자 lkj@donga.com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쌀쌀한 날씨에 부슬비까지 내렸지만 러너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2025 서울마라톤 겸 제95회 동아마라톤’이 열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마라톤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은 물론이고 대만 브라질 등 여러 국적의 참가자들은 광장을 뜨거운 열기로 수놓았다. 풀코스(42.195km) 1만9007명, 10km 코스 1만8615명 등 참가자는 3만7622명에 달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 청계천, 한강, 잠실운동장 등 서울 도심과 랜드마크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결혼 앞둔 ‘웨딩런’, 근육병 알리는 ‘극복런’“뛰는 와중에 많은 분들께서 ‘결혼 축하한다’고 응원을 해주셨어요. 비가 와서 조금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이날 10km 코스를 완주한 구혜인 씨(37)와 박형민 씨(41)가 말했다. 이들은 약 2주 앞둔 결혼을 기념하고자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2023년 러닝 동호회에서 만났다는 두 사람은 ‘we are getting married’, ‘우리 결혼해요’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구 씨는 면사포를 쓰고 부케도 든 채 10km를 뛰었다.마라톤 10년 경력의 배종훈 씨(59)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재국 씨(29)와 함께 풀코스를 약 4시간 만에 완주했다. 배 씨는 아들의 휠체어를 끌고 달렸다. 배 씨는 “아들의 근육병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74세의 권오갑 HD현대 회장도 마라토너들과 함께했다. 꾸준히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 권 회장은 해병대 공수유격대장 출신으로 골프, 수영, 암벽등반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도 오는데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덩달아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뛴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63)도 이날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안 의원의 6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다. 2년 연속 풀코스를 뛴 가수 션(53)은 “오늘 목표는 3시간10분 내로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3시간11분 만에 들어와 간발의 차이로 늦어 조금 아쉽다”며 웃었다.최근 직장인들의 최대 취미생활로 부상한 ‘러닝크루’도 많이 보였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신동원(46), 신영성(40), 김희진(41), 김제욱 씨(48)는 러닝크루를 결성해 매년 매달 1, 2회씩 마라톤에 참여 중이다. 신동원 씨는 “저희 직업의 특성상 ‘백도’가 없다. 앞으로만 달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중증 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박종석 씨(56)도 풀코스를 3시간26분 만에 완주했다. 그는 “나에게 마라톤은 제2의 인생이다. 폼이 엉성할 수 있지만 ‘풀코스도 뛰는데 못할 게 뭐냐’는 마인드가 생겼다. 따분하고 지루함만 있던 인생에 변화가 왔다”고 했다.● 13세부터 87세까지… “마라톤이 ‘의사’”참가자들은 마라톤을 통해 잃어버린 건강을 찾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 경산시에서 온 임재영 씨(45)는 “나는 콩팥이 하나가 없다. 마라톤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건강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종기 씨(62)는 “마라톤을 하면서 혈압약을 안 먹게 됐고 10년 동안 앓던 당뇨가 완치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1시간22분9초 만에 10km 완주를 해낸 김재하 씨(87)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섞여 뛰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10km 코스를 1시간15분 만에 완주한 박문수 씨(74)도 “나에게 마라톤은 ‘의사’다. 죽기 전까지 마라톤을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아버지와 함께 마라톤에 참가한 10대 소년도 있었다. 정영우 군(13)은 “아빠와 함께 뛰니 더 힘도 나고 재밌는 것 같다. 힘들지만 대회도 나가고 친구들과 기록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어서 즐겁게 한다. 아빠처럼 풀코스를 빨리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마라톤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많았다. 대만인 자매 클라라 첸 씨(21)와 리사 첸 씨(22)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날아왔다. 두 사람은 “처음 마라톤에 참여하는데 설렌다. 한국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브라질인 엘리사 마리아 씨(42)는 남편과 함께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경남 거제시에서 올라왔다. 그는 “남편은 풀코스를, 나는 10km를 뛰었지만 함께 참여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전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지난 설 연휴엔 이틀간 현수막 150개를 처리한 날도 있어요. 탄핵 관련된 내용이 70∼80%였습니다.” 13일 불법 현수막을 단속하기 위해 구청을 나서던 서울 종로구 관계자는 말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거리에 탄핵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불법 현수막도 증가하면서 지나친 현수막 정치에 피로하다는 불만은 물론이고 안전상 위험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불법 현수막, 2시간 새 10건 철거 13일 오전 동아일보는 종로구 직원들의 단속에 동행했다. 직원들은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단 2시간 동안 10건의 불법 현수막을 발견해 철거했다. 10건 중 8건이 탄핵 관련 내용이었다. 탄핵 찬성과 반대 내용이 각 4건이었다. 단속팀은 지하철 광화문역 인근에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구속하라’, ‘내란비호 검찰총장 심우정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현수막 4개를 철거했다. 11일 등 열린 민노총 집회에 사용된 현수막이었다. 집회 시 집회 신고 장소에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이들은 집회 신고 장소를 벗어난 곳에 걸려 불법이었다.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우정국로 일대에 걸린 우리공화당의 ‘尹 탄핵반대 이재명 즉각구속’ 현수막 3건은 게시 기간 등을 표시하지 않아 철거 대상이 됐다. 옥외광고물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행정동별 2개 초과 △정당 연락처, 게시 기간 등 누락 △보행자 안전 저해 등엔 철거 및 과태료가 부과된다. 종각역 인근 교차로에 ‘30번째 탄핵협박 민주당이 내란이다’가 적힌 국민의힘 현수막 역시 철거돼야 했다. 지면으로부터 1.9m 높이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교차로의 가장자리나 도로의 모퉁이, 횡단보도 인근에선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현수막 본체가 지면으로부터 2.5m 이상 높이에 설치돼야 한다. 이처럼 정당 현수막들도 우후죽순 걸리고 있지만 과태료를 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2022년 법 개정으로 정당 현수막은 별도 신고나 허가 없이 설치할 수 있게 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별다른 규제가 없으니 정당들이 거리낌 없이 현수막을 건다”며 “지자체 입장에선 정당과 마찰이 우려되다 보니 규정을 어겨도 과태료를 부과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시각 공해에 안전 문제까지 탄핵 관련 현수막이 넘쳐나면서 현수막 단속팀은 매일 비상 상태다. 종로구 관계자는 “(비상계엄 이후인) 지난해 12월 이후 시내 중심가에만 달리던 정당 현수막들이 주거지까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주에는 헌법재판소 인근 등에서 주민들의 불법 현수막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만 개수 위반, 금지장소 위반, 규격 위반 등으로 지자체가 수거한 불법 정당 현수막은 6913개로 전달(5191개)에 비해 33% 늘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홍모 씨(42)는 “매일 집회 소음에 뉴스까지 시끄러운데 현수막 정치 구호까지 넘쳐나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최근엔 지자체장까지 정치적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이 일기도 했다. 7일 충남 부여군 여성문화회관 외벽엔 ‘부여군수 박정현’ 이름으로 ‘헌정유린 국헌문란 윤석열을 파면하라’는 문구의 대형 현수막이 게시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수막이 안전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수막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뿐 아니라 통행을 막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 씨(58)는 “정치 현수막이 신호등을 가려 아찔했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수막을 통한 과한 정치적 구호는 혐오를 불러일으키거나 갈등을 유발한다”며 “또한 (불법) 현수막은 교통사고 등의 문제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으면 법규를 개정해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송무현 송현그룹 회장이 모교인 고려대에 30억 원을 기부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 송 회장의 누적 기부액은 약 48억 원이다. 고려대는 송 회장이 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삼성기념관 일민라운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30억 원을 학교에 전달했다고 12일 밝혔다. 기부액은 고려대 자연계 학생회관 리모델링 기금으로 사용되며, 개교기념일인 5월 5일 학생회관 리모델링 기공식이 열린다. 금속공학과 69학번인 송 회장은 1991년 송현그룹의 모태인 서진공업을 창업했다. 1997년부터 공과대학발전기금, 창의발전기금 등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17년엔 신공학관 건립기금으로 4억 원을, 2023년 12월에는 고려대 공과대학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1억 원을 기부했다. 송 회장은 지난해 고려대와 고려대 교우회가 학교 발전에 기여한 동문에게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상’을 수상했다. 고려대는 송 회장의 기부를 기념하기 위해 본교 SK미래관에 ‘송무현 그룹 스터디룸’을, 자연계 캠퍼스 신공학관에 ‘송무현 강의실’을 조성했다. 기부식에서 송 회장은 “모교의 개교 1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개선된 자연계 학생회관에서 후배들이 남들이 시작하지 않은, 남들이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에서 미래와 경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쾌척해 주신 자연계 학생회관 리모델링 기금은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학문에 정진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인재로 성장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통령 체포, 구속이 불법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공수처 차량을 막아선 것도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없다.”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혐의로 기소된 시위 참가자의 첫 재판이 10일 열렸다. 이날 법정에 선 피고인 23명 중 절반 이상은 이처럼 혐의를 부인했다. 일부 변호인들은 “국민의 저항권은 헌법에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을 파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국민저항권 행사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성 없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결국 양형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난입’ 시위대 일부 “검찰의 소설” 혐의 부인이날 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우현)는 1월 18, 19일 벌어진 서부지법 난입 사건에서 처음 기소된 63명 중 23명에 대한 공판을 오전과 오후에 걸쳐 진행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피고인들은 연두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피고인 수가 많은 탓에 일부 피고인들은 방청석에도 앉았다. 피고인들의 직업은 대학생, 회사원, 자영업자, 치과의사, 약사, 유튜버 등 다양했다. 피고인 23명 중 13명은 이날 공소사실을 일부 또는 전부 부인했다. 법원에 난입해 외벽 타일을 부순 혐의를 받는 이모 씨의 변호인은 “(당시) 어떠한 이유에선지 법원 후문이 개방돼 있었고 경찰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침입’한 것이 아니고 경내에 들어온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특수건조물침입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이모 씨의 변호인은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이라는) ‘특수’의 조건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변호인은 “피고인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기소됐다. 실질적으로 (법원) 후문을 강제 개방한 시민은 극히 일부이며, 나머지 피고인이 후문을 강제 개방했다는 건 검찰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을 대표해 기자들과 만난 이하상 변호사는 ‘국민저항권’을 언급하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들의 저항권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의해서 보장되고 최후 수단으로 일정력 유형력 행사도 포함된다”며 “반드시 무죄 판결이 선고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수갑을 착용하도록 한 것에 대해선 “공판정에서는 피고인 신체를 구속하지 못하게 하는 형사소송법 규칙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 법조계 “반성 없는 혐의 부인, 양형 참작 사유”일부 변호인들은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및 구속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공수처 차량을 막아선 것도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한 변호인은 “공수처가 (대통령을) 체포하고 구속한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공무집행 방해 구성 요건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가기관에 대한 폭력인 만큼, 피고인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국민저항권은 국가권력의 폭력적 행위에 적법한 구제 절차가 없을 때 예외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며 “법 위반 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반성 없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경우 양형에도 참작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판이나 수사에 불복하거나, 그 과정 속에서 폭력과 손괴 등을 하는 행태는 저항권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피고인들도 일부 있었다. 보석을 청구한 안모 씨는 “정말 죄송하다. 죽을죄를 졌다”며 3초간 입을 다문 뒤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역시 보석을 청구한 치과의사 이모 씨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갑자기 구속되면서 병원 등 운영에 실질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에 불을 지르려 한 10대 피고인, 일명 ‘투블록남’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7일까지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은 총 78명이며, 이 중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건 77명이다. 최초 기소된 63명 중 이날 재판이 열린 23명을 제외한 나머지 24명은 17일에, 16명은 19일에 첫 재판이 열린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통령 체포, 구속이 불법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공수처 차량을 막아선 것도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없다.”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혐의로 기소된 시위 참가자의 첫 재판이 10일 열렸다. 이날 법정에 선 피고인 23명 중 절반 이상은 이처럼 혐의를 부인했다. 일부 변호인들은 “국민의 저항권은 헌법에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법원을 파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국민저항권 행사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성 없이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결국 양형 등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난입’ 시위대 일부 “검찰의 소설” 혐의 부인이날 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김우현)는 1월 18, 19일 벌어진 서부지법 난입 사건에서 처음 기소된 63명 중 23명에 대한 공판을 오전과 오후에 걸쳐 진행했다.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피고인들은 연두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피고인 수가 많은 탓에 일부 피고인들은 방청석에도 앉았다. 피고인들의 직업은 대학생, 회사원, 자영업자, 치과의사, 약사, 유튜버 등 다양했다.피고인 23명 중 13명은 이날 공소사실을 일부 또는 전부 부인했다. 법원에 난입해 외벽 타일을 부순 혐의를 받는 이모 씨의 변호인은 “(당시) 어떠한 이유에선지 법원 후문이 개방돼있었고 경찰 인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침입’한 것이 아니고 경내에 들어온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특수건조물침입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이모 씨의 변호인은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이라는) ‘특수’의 조건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변호인은 “피고인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기소됐다. 실질적으로 (법원) 후문을 강제개방한 시민은 극히 일부이며, 나머지 피고인이 후문을 강제 개방했다는 건 검찰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변호인단을 대표해 기자들과 만난 이하상 변호사는 ‘국민저항권’을 언급하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민들의 저항권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의해서 보장되고 최후 수단으로 일정력 유형력 행사도 포함된다”며 “반드시 무죄 판결이 선고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수갑을 착용하도록 한 것에 대해선 “공판정에서는 피고인 신체를 구속하지 못하게 하는 형사소송법 규칙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법조계 “반성 없는 혐의부인, 양형 참작사유”일부 변호인들은 공수처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및 구속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시위대가 공수처 차량을 막아선 것도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한 변호인은 “공수처가 (대통령을) 체포하고 구속한 것을 불법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공무집행 방해 구성 요건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가기관에 대한 폭력인 만큼, 피고인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국민저항권은 국가권력의 폭력적 행위에 적법한 구제절차가 없을 때 예외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며 “법 위반 행위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반성 없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할 경우 양형에도 참작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판이나 수사에 불복하거나, 그 과정 속에서 폭력과 손괴 등을 하는 행태는 저항권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한 피고인들도 일부 있었다. 보석을 청구한 안모 씨는 “정말 죄송하다. 죽을죄를 졌다”며 3초간 입을 다문 뒤 “선처해달라”고 말했다. 역시 보석을 청구한 치과의사 이모 씨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갑자기 구속되면서 병원 등 운영에 실질적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법원에 불을 지르려 한 10대 피고인, 일명 ‘투블럭남’은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7일까지 이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은 총 78명이며, 이중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건 77명이다. 최초 기소된 63명 중 이날 재판이 열린 23명을 제외한 나머지 24명은 17일에, 16명은 19일에 첫 재판이 열린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난입 불안감에… 법원, 펜스 치고 강화유리 설치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후 법원이 안전 및 법원 방호 강화 관련 예산을 6억5000만 원 이상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펜스, 출입구 안전장치, 강화필름 등 안전 시설물 설치 예산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사법부를 향한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사법부를 공격하는 범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일 대법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부지법 난입(올해 1월 19일) 이후 지난달 6일까지 법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추가 안전 예산은 총 6억5324만 원이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창원지법 등은 강화유리필름, 접이식 펜스, 민원인 검색대 강화 등에 쓸 예산을 요청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위협받는 상황을 대비해 타 법원의 보안관리 인원을 차출해 지원하는 ‘긴급상황대응반’ 신설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사법부 대상 범죄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법원 같은 국가기관, 헌법기관의 건조물에 침입하고 폭동을 일으키면 정해진 형의 2배까지 가중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시위 몰리는 법원 “철제셔터 3억-출입통제 장치 2억” 예산 요청서부지법 난입 사태이후 불안감… 유리창 강화필름 등 보강 나서보안인력 긴급대응반도 추진… 법원들, 안전 예산 요청 잇달아“검문 강화하고 난입땐 강력 처벌”3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 검은 패딩 차림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집회 참가자 3명이 ‘윤석열 대통령님 석방’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이 법원에서는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12·3 불법 비상계엄 연루자들의 내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원 안팎의 긴장 속에 경찰 기동대원들이 정문에서 시위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1월 19일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입 이후 경찰은 기동대 1개 경력을 서울중앙지법에도 24시간 배치하고 있다. 현장 기동대원은 “서부지법 난입 이후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더욱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중”이라고 말했다.● 법원들, 강화유리-철제셔터-펜스 비용 요청 서부지법 난입 이후 전국 각급 법원들이 안전 확보 예산을 청구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법원 안팎으로 긴장과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법원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난입 사건 당일인 1월 19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2주간 각급 법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시설 강화 예산은 총 6억5324만 원으로 파악됐다. 가장 많은 예산을 요청한 건 서울고등법원이었다. 서울고법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회생법원 청사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고법이 받은 예산은 중앙지법과 회생법원에도 투입된다. 특히 중앙지법은 윤 대통령 관련 재판들이 열리고 있어 안전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서울고법은 이를 위해 철제 셔터 설치에 3억 원, 출입통제 시스템 설치에 2억 원, 건물 유리창 강화필름 시공에 1억 원을 요청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청사 1층 강화유리필름 시공에 3200만 원, 창원지방법원은 본관 1층 사법지원상담실 민원대 유리 교체 및 강화유리 시공에 600만 원을 요청했다. 대법원은 접이식 펜스 도입에 1500만 원을 요청했다. 이들 법원이 신청한 철제 셔터, 강화유리필름, 출입통제 시스템, 펜스 등은 모두 유사시 외부인의 난동이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들이다. 실제 서부지법 난입 당시 시위대는 법원 유리창을 깨고 내부에 들어왔다. 일부 법원은 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전에 이미 청사 강화를 추진해 왔다. 대전고등법원은 검색대 등 장비 교체를 위해 5억1320만6000원가량의 예산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고법 관계자는 “시설 노후 등 이유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인력 투입 ‘긴급상황대응반’ 추진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시위대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대비한 ‘긴급상황대응반’ 신설 및 운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긴급상황대응반은 난입 등 안전 위협이 높은 법원에 인근 다른 법원의 보안관리대 인원을 투입하는 제도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김태업 서부지법원장과의 면담에서도 이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역시 재판관 개개인에 대한 위협이 커지자 경찰에 대응을 요청해 둔 상태다. 현재 경찰은 헌재 재판관 전원에 대해 출퇴근 전담 경호, 자택 귀가 뒤 112 순찰 강화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심판 선고가 이달 예상되는 가운데, 선고 당일 경찰은 비상근무 단계 중 최상위 단계인 ‘갑호 비상’을 발령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청사 시설 보안 강화에서 더 나아가 사법부 등 국가 주요 기관에 대한 폭력 행위는 강력하게 처벌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사법부 등에 대한 난입과 훼손 등은 공용 건조물 침입 등 일반 건물과 같이 취급된다”며 “사회 안정 기능을 맡는 법원 등 기관에 대해서는 검문검색과 경비를 강화해야 하며, 무엇보다 합당한 처벌을 통해 이 같은 폭력 행위가 중대한 잘못임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3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 검은 패딩 차림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집회 참가자 3명이 ‘윤석열 대통령님 석방’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이 법원에서는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등 12·3 불법 비상계엄 연루자들 내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원 안팎의 긴장 속에 경찰 기동대원들이 정문에서 시위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1월 18일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입 이후 경찰은 기동대 1개 경력을 서울중앙지법에도 24시간 배치하고 있다. 현장 기동대원은 “서부지법 난입 이후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더욱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중”이라고 말했다.● 법원들, 강화유리-철제셔터-펜스 비용 요청 서부지법 난입 이후 전국 각급 법원들이 안전 확보 예산을 청구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법원 안팎으로 긴장과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법원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난입 사건 당일인 1월 19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2주간 각급 법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시설 강화 예산은 총 6억5324만 원으로 파악됐다.가장 많은 예산을 요청한 건 서울고등법원이었다. 서울고법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회생법원 청사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고법이 받은 예산은 중앙지법과 회생법원에도 투입된다. 특히 중앙지법은 윤 대통령 관련 재판들이 열리고 있어 안전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서울고법은 이를 위해 철제 셔터 설치에 3억 원, 출입통제 시스템 설치에 2억 원, 건물 유리창 강화필름 시공에 1억 원을 요청했다. 청주지방법원은 청사 1층 강화유리필름 시공에 3200만 원, 창원지방법원은 본관 1층 사법지원상담실 민원대 유리 교체 및 강화유리 시공에 600만 원 요청했다. 대법원은 접이식 펜스 도입에 1500만 원을 요청했다.이들 법원이 신청한 철제 셔터, 강화유리 필름, 출입통제 시스템, 펜스 등은 모두 유사시 외부인의 난동이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물들이다. 실제 서부지법 난입 당시 시위대는 법원 유리창을 깨고 내부에 들어왔다. 일부 법원은 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전에 이미 청사 강화를 추진해왔다. 대전고등법원은 검색대 등 장비 교체를 위해 5억1320만6000원 가량의 예산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전고법 관계자는 “시설 노후 등 이유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안인력 투입 ‘긴급상황대응반’ 추진법원행정처는 법원이 시위대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대비한 ‘긴급상황대응반’ 신설 및 운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긴급상황대응반은 난입 등 안전 위협이 높은 법원에 인근 다른 법원의 보안관리대 인원을 투입하는 제도다.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김태업 서부지법원장과의 면담에서도 이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 역시 재판관 개개인에 대한 위협이 커지자 경찰에 대응을 요청해둔 상태다. 현재 경찰은 헌재 재판관 전원에 대해 출퇴근 전담 경호, 자택 귀가 뒤 112 순찰 강화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심판 선고가 이달 예상되는 가운데, 선고 당일 경찰은 비상근무 단계 중 최상위 단계인 ‘갑호 비상’을 발령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전문가들은 청사 시설 보안 강화에서 더 나아가 사법부 등 국가 주요 기관에 대한 폭력 행위는 강력하게 처벌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사법부 등에 대한 난입과 훼손 등은 공용건조물침입 등 일반 건물과 같이 취급된다”라며 “사회 안정 기능을 맡는 법원 등 기관에 대해서는 검문검색과 경비를 강화해야 하며, 무엇보다 합당한 처벌을 통해 이같은 폭력 행위가 중대한 잘못임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 이후 법원이 안전 및 법원 방호 강화 관련 예산을 6억 5000만 원 이상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펜스, 출입구 안전장치, 강화필름 등 안전 시설물 설치 예산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사법부를 향한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사법부를 공격하는 범죄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3일 대법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부지법 난입(올해 1월 19일) 이후 지난달 6일까지 법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추가 안전 예산은 총 6억5324만 원이다.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창원지법 등은 강화유리필름, 접이식 펜스, 민원인 검색대 강화 등에 쓸 예산을 요청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위협받는 상황을 대비해 타 법원의 보안관리 인원을 차출해 지원하는 ‘긴급상황대응반’ 신설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전문가들은 사법부 대상 범죄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법원 같은 국가기관, 헌법기관의 건조물에 침입하고 폭동을 일으키면 정해진 형의 2배까지 가중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 일원의 한 집회 현장. 집회 참가자들의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들려 있는 가운데 이를 판매하는 ‘태극기 좌판(소매상)’이 곳곳에 깔렸다. 취재팀이 좌판 5곳을 돌아본 결과 손에 들고 흔드는 소형 태극기인 ‘수기(手旗)’는 크기에 따라 1000∼2000원이었다. 그보다 조금 큰 중형은 3000∼4000원, 대형은 5000원에 팔렸다. 이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소형은 ‘중국산’이다. 태극기를 묶어 담은 포장 비닐에는 ‘made in China’(중국산)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일부 판매상은 손님에게 “중국산은 깃대가 약하다. 조금 비싸도 국산을 사겠느냐”고 권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산을 샀다. 판매상들은 “중국산은 태극기-성조기 세트가 4000원”이라며 “약하고 잘 부러져도 가장 잘 팔린다”고 말했다.● 대부분 값싼 중국산… ‘made in China’ 뚜렷 3·1절을 앞두고 취재팀이 최근 집회 시위 현장에서 팔리는 태극기를 점검해 본 결과 대부분 중국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은 깃대가 쉽게 부러지고 원단도 조악하다. 일부는 태극기 괘 너비(태극 지름의 3분의 1) 등 국기 규격까지 어겼지만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많이 판매됐다. 한 태극기 판매자는 “예전엔 중국산을 안 팔았는데 값싸서 찾는 분들이 많으니 들여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중국산과 국산은 미세하지만 달랐다. 중국산 태극기는 원단의 강도도 국산보다 약했고 태극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의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 색채도 국산보다 옅었다. 깃대는 빨대와 비슷한 플라스틱으로 쉽게 휘어졌다. 대한민국 국기법 등에 따르면 깃대 끝의 동그란 깃봉은 아랫 부분에 꽃받침 다섯 편이 있는 둥근 무궁화 봉오리 모양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중국산은 무궁화 봉오리 없이 그냥 둥근 모양이었다.● 업체들 “수요 60∼70% 줄어, 일부 집단 상징처럼 변해” 태극기를 생산, 판매하는 국내 업체들은 “최근 중국산 범람으로 주문이 급감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의 태극기 제작업체 동산기획에서 만난 이면식 대표(62)는 3·1절 대목을 앞두고 태극기를 포장 중이었다. 그는 “과거 1만 장을 가뿐히 넘기던 태극기 주문량이 요즘은 3000∼4000장에 그친다”며 60∼70%가량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중국산은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낮춘다. 가격도 국산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일부 집회 주최 측에선 “태극기를 무료로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고 한다. 시민들은 우리나라 독립의 상징인 태극기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대학원생 권모 씨(25)는 “국기는 국가 공동체에 큰 정신적 영향을 주는 요소인데, 유통되는 태극기 다수가 중국산이라는 것은 국기의 상징성을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원 강모 씨(30)는 “태극기를 들고나오는 시위대 중 상당수는 중국 혐오, 중국 비판 발언을 많이 하는데 정작 그들이 손에 든 태극기가 중국산”이라고 지적했다. 태극기가 마치 일부 보수단체의 상징처럼 바뀌면서 전체적인 수요가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래원 대한민국국기홍보중앙회장은 “최근 한 시민은 태극기를 구입하면서 ‘부끄럽다. 밖에서 안 보이게 포장해 달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태극기에 대한 현재 국민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상징물이 마치 일부 정치이념 집단의 상징처럼 왜곡되면서 사람들이 구입 및 사용을 꺼린다는 지적이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지난달 22일 서울 광화문 일대 한 집회 현장. 집회 참가자들의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들려 있는 가운데 이를 판매하는 ‘태극기 좌판(소매상)’이 곳곳에 깔렸다. 취재팀이 좌판 5곳을 돌아본 결과 손에 들고 흔드는 소형 태극기인 ‘수기(手旗)’는 크기에 따라 1000~2000원이었다. 그보다 조금 큰 중형은 3000~4000원, 대형은 5000원에 팔렸다.이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소형은 ‘중국산’이다. 태극기를 묶어 담은 포장 비닐에는 ‘made in China’(중국산)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일부 판매상들은 손님에게 “중국산은 깃대가 약하다. 조금 비싸도 국산을 사겠느냐”고 권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산을 샀다. 판매상들은 “중국산은 태극기-성조기 세트가 4000원”이라며 “약하고 잘 부러져도 가장 잘 팔린다”고 말했다.● 대부분 값싼 중국산… ‘made in China’ 뚜렷3·1절을 앞두고 취재팀이 최근 집회시위 현장에서 팔리는 태극기를 점검해본 결과 대부분 중국산이 많이 팔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은 깃대가 쉽게 부러지고 원단도 조악하다. 일부는 태극기 괘 너비(태극 지름의 3분의 1) 등 국기 규격까지 어겼지만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잘 판매됐다. 한 태극기 판매자는 “예전엔 중국산을 안 팔았는데 값싸서 찾는 분들이 많으니 들여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중국산과 국산은 미세하지만 달랐다. 중국산 태극기는 원단의 강도도 국산보다 약했고 태극문양과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의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등 색채도 국산보다 옅었다. 깃대는 빨대와 비슷한 플라스틱으로 쉽게 휘어졌다. 대한민국 국기법 등에 따르면 깃대 끝의 동그란 깃봉은 아랫부분에 꽃받침 다섯 편이 있는 둥근 무궁화 봉오리 모양이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중국산은 무궁화 봉오리 없이 그냥 둥근 모양이었다.● 업체들 “수요 60~70% 줄어, 일부 집단 상징처럼 변해”태극기를 생산, 판매하는 국내 업체들은 “최근 중국산 범람으로 주문이 급감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의 태극기 제작업체 동산기획에서 만난 이면식 대표(62)는 3·1절 대목을 앞두고 태극기를 포장 중이었다. 그는 “과거 1만 장을 가뿐히 넘기던 태극기 주문량이 요즘은 3000~4000장에 그친다”며 60~70%가량 줄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중국산은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춘다. 가격도 국산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일부 집회 주최 측에선 “태극기를 무료로 제공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고 한다.시민들은 우리나라 독립의 상징인 태극기 상당수가 중국산이라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대학원생 권모 씨(25)는 “국기는 국가 공동체에 큰 정신적 영향을 주는 요소인데, 유통되는 태극기 다수가 중국산이라는 것은 국기의 상징성을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원 강모 씨(30)는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시위대 중 상당수 중국 혐오, 중국 비판 발언을 많이 하는데 정작 그들이 손에 든 태극기가 중국산”이라고 지적했다.태극기가 마치 일부 보수단체의 상징처럼 바뀌면서 전체적인 수요가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래원 대한민국국기홍보중앙회장은 “최근 한 시민은 태극기를 구입하면서 ‘부끄럽다. 밖에서 안 보이게 포장해 달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태극기에 대한 현재 국민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상징물이 마치 일부 정치이념 집단의 상징처럼 왜곡되면서 사람들이 구입 및 사용을 꺼린다는 지적이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경찰이 고위 간부급인 경무관과 총경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승진자 중에는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에 파견 갔던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보은 인사’ 논란이 일고 있다. 27일 경찰청은 경무관 승진 임용 예정자 30명과 총경 승진 대상자 104명 등 경찰 고위직 승진 대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경무관과 총경은 경찰 내에서 각각 네 번째, 다섯 번째로 높은 계급으로 경찰의 ‘별’과 ‘꽃’이라 불린다. 통상 12월과 1월경 사이에 승진 인사가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두 달가량 늦어졌다. 승진 대상자에는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로 파견 갔던 인사가 상당수 포함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세관 마약 사건’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찬수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실 행정관(총경)은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세관 마약 수사팀장이었던 백해룡 경정은 국회에 나와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었던 김 행정관이 자신에게 “‘용산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면서 (세관 마약 관련) 브리핑 연기를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용산 외압 논란이 일자 김 행정관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야권에서 ‘친윤(친윤석열)’으로 거론한 박종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경정)은 총경으로 승진했다. 박 경정은 윤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된 직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윤 대통령이) 옥중 인사를 하고 있고, 이원모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결재를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박종현 행정관이 경정인데 이번에 총경으로 승진시켜 요직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행정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대통령실로 파견 간 조영욱 경정,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 경찰국에 각각 파견 중인 오기덕 경정과 이용두 경정도 총경으로 승진했다. 앞선 치안감 인사에서도 국정상황실에 파견된 남제현 경무관, 국무조정실에 파견된 박종섭 경무관이 승진했다. 같이 치안감으로 승진한 조정래 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 역시 101경비단장으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대통령실 일대 치안을 담당하는 용산경찰서에서도 승진자가 나왔다. 호욱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경무관으로, 김태정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은 총경으로 승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보은성 인사’ 비판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경무관 승진자는 20명 정도 나오는데 이번에 이례적으로 많았다”며 “혹시 정권이 바뀌면 승진하지 못할 사람들을 미리 승진시키려고 승진자 수를 늘린 것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