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영 양(왼쪽)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혈압과 빈맥으로 중학교 3학년 시절을 거의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오른쪽)는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를 했고 사실상 완치 판정을 내렸다. 나 교수는 특히 10대에서 이 병의 적극적 치료를 강조했다. 한양대병원 제공
2021년 11월, 당시 중학교 1학년 김하영 양(16)은 제1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 그 후 가슴과 윗배에 통증이 나타났다. 숨 쉴 때마다 통증은 더 심해졌다. 밤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깬 적도 있다. 평소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은 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증세는 더 심해졌다. 결국 백신 접종 일주일 만에 한양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백신 부작용으로 판단했다. 통증을 줄이는 치료를 했다. 하영 양은 3일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 두통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22년 들어서도 네 번 더 입원해 백신 부작용 치료를 받았다. 2~4일씩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되면 퇴원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그해 5월 중순 통증이 사라졌다. 더 이상 병원에 갈 일은 없을 줄 알았다.
● 갑작스레 나타난 고혈압과 빈맥
7개월이 흘렀다. 2022년 12월, 두통이 다시 생겼다. 다만 양상이 과거와 달랐다. 예전에는 잠깐 편두통처럼 아팠다가 진통제를 먹으면 나았다. 이번에는 정수리 부위를 강하게 압박하는 것처럼 아팠다. 흉통과 상복부 통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영 양 부모는 혹시나 해서 혈압을 측정했다. 수축기 혈압이 130㎜Hg, 확장기 혈압이 81㎜Hg로 나왔다.
성인의 경우 수축기 120㎜Hg 미만, 확장기 80㎜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본다. 하영 양 혈압 수치는 고혈압 전 단계에 속한다. 성인 기준을 따른다면 아직 위험한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영 양을 치료한 나재윤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혈압 유발 요인이 전혀 없는 10대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음주와 흡연도 하지 않고 비만보다는 오히려 마른 체형에 더 가까우며, 부모 모두 고혈압과 무관해 가족력도 없는 하영 양의 경우 고혈압이 생길 이유가 없다는 것.
이 또한 백신 부작용이었을까. 나 교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혈압이 생기는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대표적 부작용인 가슴과 복부 통증은 오히려 사라졌기 때문. 게다가 이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빈맥과 같은 부정맥 증세도 나타났다. 나 교수는 “최초 6개월까지는 백신 부작용이지만 이때부터는 백신 부작용과는 관련이 없다.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율신경계 부전 진단
나 교수는 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하영 양을 입원시킨 뒤 여러 검사를 시행했다. 하지만 모든 검사에서 정상 소견이 나왔다. 고혈압 원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나 교수는 자율신경계 부전을 의심했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혈압이 높아지고 빈맥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율신경계 부전은 말 그대로 자율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건강하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혈압과 맥박 등을 조절한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서로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시스템이 고장 나기도 한다. 그 결과 갑자기 혈압이 치솟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때로는 정신을 잃기도 한다. 물론 정반대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도 한다. 문제는, 증세는 분명 위급해 보이는데 많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의 경우 50대 이후에 발생 확률이 올라간다. 기저 질환이 있다면 그 질병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10대 청소년에게서도 종종 발생하는데, 기저 질환이 없어도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특히 10대의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나 교수는 “늦지 않고 제대로 치료만 하면 자율신경계 부전은 성인이 된 후 대부분 개선돼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일시적이구나’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면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 8개월 동안 17회 입원
나 교수는 우선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투입하고 경과를 지켜봤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기 전에 혈압이 떨어졌다. 나 교수는 고혈압 약을 처방한 뒤 퇴원시켰다. 이후 3개월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다.
2023년 3월, 갑자기 두통이 또 시작됐다. 정수리를 짓누르는 그 두통이었다. 이번에는 강도가 더 셌다.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도 했다.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다시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퇴원했지만 나흘이 지나서 다시 같은 증세로 입원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하영 양은 그해 3월부터 10월까지 8개월 동안 17회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을 썼다. 자율신경계를 구성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가운데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교감신경의 ‘베타수용체’를 차단하면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혈압이 낮아지고 심장 부담도 줄어드는 것. 다만 교감신경 활동을 너무 차단하면 반대로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 저혈압이 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장 적합한 약을 용량에 맞춰 투입하는 게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여러 약물을 교차로 처방하기도 했다.
고혈압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압은 더 높아졌다. 나중에는 수축기 혈압이 190㎜Hg까지 올라갔다. 정신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코피도 자주 났는데, 나중에는 약으로 지혈되지 않아 코 안쪽 혈관을 전기로 지져야 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몸 상태는 더욱 악화했다. 원래 하영 양은 편도가 조금 비대한 편이었다. 감기에 걸리면 편도는 더 부어올랐다. 열도 더 많이 올랐고, 혈압도 치솟았다. 심장박동도 더 빨라졌다. 이런 고통을 줄이기 위해 비대해진 편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목은 많이 편해졌지만, 항생제 부작용이 나타났다. 장염이 심해졌고, 그 여파로 맹장염까지 걸렸다. 하영 양은 “2023년 한 해는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 거의 완치, 유학 앞둬
2023년 10월, 하영 양은 퇴원했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재입원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 교수는 “정말 길고도 힘든 투병이었다. 무엇보다 잘 버텨 준 하영 양과, 의료진을 끝까지 믿어준 부모의 공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 모두 지치기 쉽다”고 덧붙였다.
그해 하영 양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보니 출석 일수를 채울 수 없었다. 마침 한양대병원이 청소년 항암 환자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하는데, 이 수업에 참석하면 출석 일수를 채운 것으로 인정됐다. 이 교수의 추천으로 병원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업 일수를 채웠고, 하영 양은 친구들과 똑같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하영 양은 국내 고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딱 한 번 혈압이 190㎜Hg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후로는 정상을 되찾았다. 이 교수는 “일시적으로 그런 증세가 나타날 수는 있지만 지속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때를 제외하고 혈압은 항상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다른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혹시 모를 증세에 대비해 상비약을 휴대하고 다니기는 한다.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하영 양은 간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올 8월 미국 대학에 진학한다. 투병 과정에서 간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단다. 그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응원과 따뜻한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다. 나도 나중에는 아픈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중에 문제는 생기지 않을까. 이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율신경계 부전은 1~2년 동안 몰아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이미 1년 넘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하영 양 자율신경계 부전 투병 일지
▽ 2011년 11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흉통과 상복부 통증 호소 한양대병원 입원
▽ 2011년 11월 ~ 2022년 5월 6개월 동안 5회 입원하며 백신 부작용 치료
▽ 2022년 12월 심한 두통과 고혈압으로 재입원 여러 검사 결과 원인 찾지 못하자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 시작.
▽ 2023년 3월 ~ 2023년 10월 8개월 동안 17회 입원하며 자율신경계 부전 치료 혈압 190㎜Hg까지 상승하고 실신하기도 편도 비대 수술 시행 후 장염과 맹장염 앓기도 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돼 입원 치료 종결
▽ 2025년 현재 고혈압 더 이상 발생하지 않으며 건강 상태 유지 해외 생활도 가능해 8월 유학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