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멍때리기’가 뇌 혈류 원활하게…창의적 생각에 도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9일 1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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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수교에서 열린 ‘2025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들이 멍하니 있다. 2025.5.11. 뉴스1
올해 5월 11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2025 한강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멍때리기 대회는 2014년에 처음 시작된 행사로,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멍한 상태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대회 우승자는 현장에서 진행되는 시민 투표와 안정적인 심박수를 종합해 뽑힙니다.

이번 대회에는 4500여 팀이 신청해 총 80팀이 선발됐습니다. 참가자들은 말하거나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웃을 수도 없습니다. 대신 4종류의 카드를 써서 물, 부채질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멍때리기에 실패하면 퇴장 카드를 받고, 전통 무관 복장을 한 진행자에 의해 경기장 밖으로 끌려 나갑니다.

●‘멍’고수를 찾아라, 멍때리기 대회

대회 현장에는 라마 인형 탈을 쓰거나 피에로 복장을 하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시민 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지요. 본격적으로 대회가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습니다.

90분이 지난 끝에 포크록 밴드 ‘포고어택’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민 투표를 가장 많이 받았고, 안정적으로 심박수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포고어택의 멤버 박병진 씨는 “평일에는 일, 주말에는 공연을 하느라 멍때릴 시간이 부족했는데 대회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빠, 동생과 함께 팀으로 참가한 김주아 양(서울 옥정초)은 “자주 멍때리기를 하는 편인데도 90분 동안 멍 때리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지각심리학에 따르면 멍 때리기는 외부 자극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뇌과학에서는 멍때리기를 의식은 깨어 있지만 어떤 한 가지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해요. 즉, 멍 때리기를 하면 어떤 것을 보고 있어도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어요.

●멍때릴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일

멍때리기를 하면 먼저 몸속 근육이 이완됩니다. 사물을 보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눈이나 입 주변 등 몸의 근육이 긴장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멍때리기를 하면 얼굴 근육이 스르르 풀어집니다. 이에 따라 눈의 한 부분인 수정체의 긴장이 풀려 초점이 흐려지고, 입도 자연스레 벌어집니다 또 호흡이 깊어지고 호흡 속도가 느려지며 심박수도 느려집니다. 일시적으로 혈관이 이완되기 때문에 혈압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멍때릴 때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뇌가 활동하는 부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이용해 외부 자극을 받아들입니다. 이 자극은 뇌에서 전기 신호로 변환돼 뉴런을 따라 이동하죠. 뉴런은 뇌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단위의 신경세포입니다. 수상돌기, 축삭말단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전기 신호가 뉴런의 끝에 도달하면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다음 뉴런에 전달됩니다. 이렇게 전기 신호가 뇌 곳곳에 전달돼 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멍때리기를 하면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DMN은 전전두엽, 두정엽 뒤쪽 등의 대뇌 부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국뇌연구원 김주현 선임 연구원은 “DMN이 활성화되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외부 자극을 잠시 잊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멍때릴 때 생각이 꼬리를 물며 옛날 일을 회상하거나 상상하게 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멍때리기는 복잡한 신경학적 현상

멍때리기는 단순히 피곤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 4월 24일 프랑스 소르본대 뇌 연구소 등 공동 연구팀은 멍때리기가 뇌 안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신경학적인 현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인지 과학 경향’에 게재했습니다.

연구팀은 ‘마인드 블랭킹’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마인드 블랭킹은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단어로 멍때리기와 유사한 증상입니다. 연구팀은 마인드 블랭킹에 관련된 논문 80편을 바탕으로 마인드 블랭킹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먼저 뇌가 깨어 있는 상태인 뇌의 각성도를 파악했습니다. 보통 잠이 부족하거나 몸이 피곤하면 뇌의 각성도가 낮아집니다. 뇌의 각성도가 낮거나 높아지면 뇌 영역 간의 정보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신호를 주고받기 어려운 겁니다.

연구팀은 이에 따라 기억, 주의, 언어 세 가지의 인지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억을 못 하게 되거나 주의력이 떨어질 수 있고,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인드 블랭킹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연구팀은 “마인드 블랭킹은 단순히 피로한 상태라기보다는 뇌와 몸이 만들어낸 독립적인 정신 상태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적당한 멍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줄 수 있습니다. 멍때리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발히 작동하며 혈류가 몰립니다. 그런데 멍한 상태에서는 DMN이 활성화되며 자율신경계가 이완되고 뇌 혈류의 흐름이 원활해집니다.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멍때리기를 자주 하면 DMN이 지나치게 활성화돼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멍때리기 대회#뇌과학#마인드 블랭킹#신경학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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