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휴’는 일반인에겐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국내 뮤지컬계에선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작가지만, 배우들만큼 유명하진 않았다. 많은 이들이 8일(현지 시간) 미국 공연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6관왕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박 작가의 이력과 작품을 찾아볼 정도였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55)나 2019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56)이 이미 대중적인 유명인이었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
하지만 박 작가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기록적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토니상에서 △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 △무대디자인상을 휩쓸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첫 토니상 수상이다. 그 덕에 한국은 에미(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래미(소프라노 조수미), 아카데미(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 토니라는 미국 대중문화 최고상 4대 트로피를 모두 품에 안은 나라가 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버려진 로봇 두 대가 사랑과 우정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감정을 발견해 가는 이야기다. 소규모 무대지만, 감정의 밀도와 서사의 정교함으로 브로드웨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2016년 한국 초연부터 “인간의 외로움과 유대의 힘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아름다운 음악에 담아냈다”는 호평이 많았지만, 한국 순수 창작극으로 토니 6관왕을 거머쥘 줄은 쉽사리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 작가는 한국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뒤 대중음악 작사가를 거쳐 뮤지컬계에 뛰어든 인물이다. 기존 뮤지컬 흥행 공식과 거리를 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 왔다고 한다. 2013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번지점프’로 최우수 작사·작곡상을 수상했지만, 거장이라 불릴 만한 인물은 아니다.
박 작가가 42세에 토니상을 받은 건 젊은 편일까. 적어도 역대 최연소는 아니다. 영국 작곡가 토비 말로(31)는 28세인 2022년 토니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반면 미 작곡가 겸 작사가 아돌프 그린(1914∼2002)은 77세 때인 1991년에야 토니상 음악상을 받을 정도로 말년에 투혼을 발휘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이나 경력이 아니란 점이다. 한강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을 때 문학계에선 “아직 다른 한국 거장 문인들이 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예측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8년 만에 그는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국 문화계는 여전히 ‘연차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벽과 싸운다. 데뷔 몇 년 차인지, 어느 계보에 속하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박 작가의 토니상 수상은 나이와 경력의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예술엔 선후배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줬다. 예술의 본질은 결국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새롭고 깊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느냐에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더 자주 이름 모르는 예술가가 뉴스에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보는 건 어떨까. 부족한 내 상식에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름을 모르는 예술가의 이름을 검색해보고, 뒤늦게라도 작품 세계에 빠져드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길 꿈꿔 본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관객석으로 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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