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국민의힘, 쇄신 없인 ‘21% 지지율’도 사치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5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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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직후보다 떨어진 국힘 지지율
쇄신-개혁 능력은 고사하고 의지조차 의문
계엄-실정은 승계 아닌 청산 대상 부채
‘107석 야당’에 만족해선 미래 없어

천광암 논설주간
천광암 논설주간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 지지율이 급전직하로 추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10∼12일 실시한 정기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의힘 지지율은 21%였다. 12·3 계엄 직후의 24%보다도 낮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격차는 5년 내 최대치로 벌어졌다.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층인 60대 이상 연령층에서마저 민주당에 크게 밀렸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열세로 돌아섰다. 이렇게 가다가는 ‘영남 자민련’조차 ‘자조(自嘲)적 표현’이 아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될 판이다.

국민의힘 지지율 폭망은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실망감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번 6·3 대선이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계엄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동아시아연구원이 이번 대선 직후 실시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잘못을 반성하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적극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의견이 68.2%나 됐다. 그런데 국민의힘의 지금 모습은 어떤가.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8일 발표한 ‘5대 개혁 과제’를 둘러싼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면, 개혁을 해나갈 능력은 둘째치고 그럴 의사가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게 한다. 김 위원장의 5대 개혁안은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대선 후보 교체 진상 규명, 당심·민심 반영 절차 구축, 지방선거 100% 상향식 공천, 9월 초까지 전당대회 개최 등 5가지다. 이 중 뒤의 2가지는 계파 간의 이해가 엇갈리는 당 내부 문제로 볼 소지가 있는 만큼 논외로 치자. 하지만 앞의 3가지는 국민의힘이 계엄 이후 대선 직전까지 보여준 구태를 청산하겠다는 각오를, 국민에게 내보인다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할 최소한의 개혁 조치다.

이제 와서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을 무효화한다고 해서 감동을 받을 국민도 없겠지만, 그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계엄과 단절하라’는 국민적 요구와 척(隻)을 지고 가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김 위원장이 내놓은 개혁안은 1주일이 지나도록 논의 테이블에조차 올리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김 위원장이 당 쇄신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의원총회를 권성동 원내대표(12일 퇴임)가 개최 40분 전 문자로 취소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당 쇄신의 발목을 잡는 친윤 그룹에도 일견 그럴싸한 논리는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권 원내대표가 퇴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가업(家業)승계론’이다. 이런 내용이다.

“가업을 이어받을 때 자산과 부채는 함께 승계됩니다.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1야당이라는 자산(資産)이 있으면서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실패와 탄핵이라는 부채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산과 부채 중 하나만 취사선택할 수 없습니다.”

공당(公黨)의 개혁 문제에 ‘가업승계’를 끌어다 붙인 발상은 “원래 선거라는 건 패밀리 비즈니스(가업)”라는 윤 전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빼다 박았다. 알다시피 윤 전 대통령의 ‘패밀리비즈니스론’은 ‘명태균 게이트’와 ‘건진 게이트’를 싹 틔운 기름진 토양이 됐다. ‘가업승계론’이 국민의힘에 얼마나 큰 해독을 끼칠지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권 전 원내대표의 말마따나 ‘윤석열 정부의 실패와 탄핵’이 부정적 유산이라는 점에서 ‘부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자산과 함께 반드시 승계해야 할 부채가 아니다. 그냥 장부에서 지워버려도 뭐라 할 채권자가 없는 ‘가공(架空) 부채’, 아니 반드시 청산해야 할 ‘악성 부채’일 뿐이다. 상속을 거부해도 박수를 받으면 받았지, 빚 독촉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권 전 원내대표가 자산(資産) 목록에 ‘제1야당’을 올린 것도 황당하다. ‘당이야 여당이 되건 야당이 되건, 나는 당권만 쥐면 된다. 텃밭에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만 되면 된다’는 사고가 지배하는 국민의힘의 분위기가 무의식을 파고든 것이 아닐까 싶다. 거대양당제가 뿌리내린 대통령제 국가에서 최대 보수정당의 승계 자산은 ‘준비된 수권정당’이어야지 단 한 순간도 ‘제1야당’이어선 안 된다.

정치든 비즈니스든 단절 없는 쇄신이나 파괴 없는 혁신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힘이 계엄과의 단절, 윤석열 정권이 남긴 부정적 유산의 청산을 미적대선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대선 결과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보여준다. 국민의힘이 쇄신에 따르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107석 제1야당’에 만족해선, ‘지지율 21%’도 과분한 사치일 뿐이다.

#국민의힘#지지율#대선#개혁안#윤석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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