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 6월 16일 궁예가 살해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8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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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왕 표준영정. 강원 철원군 제공
궁예왕 표준영정. 강원 철원군 제공
이문영 역사작가
이문영 역사작가
궁예는 흙수저였다. 과부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살 길이 막막해 승려가 됐다. 혼란한 시대를 만나 밑바닥 군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능력과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시대를 이끌고 나갈 높은 뜻도 세웠다. 궁예는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만들고 무리를 이끌며 전공(戰功)을 세웠다.

궁예는 치면 이기고 나가면 승리했는데, 그 비결은 병사들의 헌신에 있었다. 그는 어려울 때와 즐거울 때 병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상벌은 공정했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이러니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그를 따랐다. 그는 엄격한 상사여서 두렵기도 했지만 그가 사랑에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병사들은 그를 사랑했다. 병사들은 자진해서 그를 장군으로 추대했다. 궁예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의 명성이 퍼지니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지경이었다. 각 지역의 실력자들이 그를 찾아와 항복했다. 궁예의 야심은 더욱 커졌다. 그는 신라의 북방을 근거지로 했기 때문에 고구려의 후계를 자처했다. 고구려가 신라에 멸망당한 원한을 갚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구려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궁예는 또 스스로 신라의 왕자라 자처했다. 궁예는 한쪽 눈에 장애가 있었는데, 아기 때 죽음을 피하려다 입은 상처라고 말했다. 자기를 죽이려 한 신라는 멸망시켜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그렇게 가짜로 만든 증오로 백성들을 이끌고자 했다. 신라 왕자가 고구려의 원한을 갚겠다고 하니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한계를 깨달았는지 궁예는 후고구려라는 국호를 금방 버리고 마진, 태봉으로 계속 나라 이름을 바꿨다. 이 나라 이름의 뜻이 뭔지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나라 이름이 뜻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자체가 궁예가 지향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신하와 백성들이 알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궁예는 이미 방향을 잃었다.

그는 자신의 성취에 취했고 자신의 위대함에 빠져들었다. 사치가 넘치는 궁궐을 짓고 주위의 간언은 듣지 않았다. 당연히 주변에는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간신들이 꾀어들었다. 그는 스스로를 세상의 구세주라 여기고 자신을 미륵불이라 칭했다. 괴이한 말로 가득 찬 경전을 짓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때려죽였다. 아내가 말리자 간통을 했다는 누명을 씌워 잔인하게 죽였다. 엄마의 비극에 놀란 아이들마저 죽였다. 피를 맛본 궁예는 더욱 미쳐 돌아갔다. 그는 신하들은 물론 백성들까지도 서스럼없이 살해하는 살인마가 됐다.

신하들은 더 이상 그를 주군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신망이 높았던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궁예 스스로도 돌이킬 수 없게 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왕건이 나섰다면 나는 끝났구나”라고 말하며 달아났다. 궁예는 이틀을 숨어 지냈으나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남의 밭에 들어가 보리 이삭을 베어 먹다가 들키고 말았다. 음력 6월 16일, 궁예를 알아본 백성은 분노에 떨며 그를 죽여버렸다. 백성을 배신한 지도자는 가장 혹독한 심판대에 오른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권력자가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을 배신했는지에 대한 특검이 시작된다. 모든 진실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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