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1억3000만 원 형사보상금 받는 김학의 전 차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8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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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2일 오후 11시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야구모자를 눌러쓴 중년 남성을 에워쌌다. 한밤에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었다. 태국행 비행기를 타려던 그를 출입국 직원들이 막아선 것이다. 당시 김 전 차관은 피의자 신분은 아니었다. 별장 성접대를 받은 의혹으로 그를 수사했던 검찰이 이미 두 차례 무혐의 처리한 상태였다. 하지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재수사 의지를 밝히자 그는 몰래 출국을 시도했고, 덜미를 잡혔다.

▷세 번째 수사에서 그는 결국 기소됐다. 하지만 앞서 수사했던 검찰이 봐주기·뭉개기로 6년을 허송세월한 대가가 컸다. 특수강간 등 혐의의 증거가 휘발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1심 법원은 성접대와 금품수수를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불분명하다며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선 뇌물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되긴 했다. 하지만 법원이 인정한 건 사건 본류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와의 유착이 아닌, 다른 업자에게서 받은 뇌물이었다. 이마저 대법원에서 “검사의 회유에 따른 거짓 진술 가능성이 있다”며 2심을 뒤집고 무죄를 확정했다.

▷최근 법원은 김 전 차관에게 1억3000만 원의 형사보상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그가 2심 실형 선고 등으로 14개월간 수감됐던 것에 대한 보상이다. 형사보상은 무죄가 확정된 피고인에게 구금에 따른 손해와 변호사 비용 등을 보상해주는 제도다. 검찰 간부 시절 성접대와 금품을 받았던 고위 공직자가 국가 형사절차의 피해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김 전 차관에 대한 전반기 수사가 부실·축소 수사였다면, 문재인 정부 이후 후반기에는 정권 입맛에 맞춘 무리한 수사가 이뤄졌다. 불법 출국금지 논란도 그래서 빚어졌다. 청와대 비서관과 법무부 간부, 현직 검사가 김 전 차관의 도피성 출국을 막기 위해 출금 요청서에 허위 내용까지 기재해 수사를 받았다. 김 전 차관은 공권력 남용의 피해자로 대우받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전원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 전 차관 관련 사건은 의혹이 제기된 2013년부터 10년 넘게 숱한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지만 유죄 판결이 난 건 건설업자 윤 씨뿐이다. 사법 시스템이 그렇게 낭비된 것도 모자라 김 전 차관에게 국민 세금으로 1억 원이 넘는 형사보상금까지 쥐여 주게 됐다. 애초에 검찰이 김 전 차관을 제때 제대로 수사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윤 씨를 담당했던 재판부는 “(검찰 수사가) 대부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절됐다. 검찰이 2013년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다면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며 부실 늑장 수사를 질타했다. 수사기관의 직무 유기는 우리 사회에 이토록 값비싼 비용을 떠안긴다.

#김학의#출국금지#성접대#검찰 수사#형사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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