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아도 괜찮습니다… 음악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허명현의 클래식이 뭐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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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공연을 들으러 가면 졸까 봐 걱정돼요.”

클래식 공연장에 처음 가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다. 이 문장 안에는 클래식 공연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이 담겨 있다. 뭔가 옷도 단정히 차려입어야 할 것 같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괜히 민폐 끼치지 않으려면 나도 열심히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또 공연 내내 자세를 바로 하고 졸음을 참는 것도 왠지 클래식 공연에서는 기본예절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도 그랬다. 학창 시절 처음 가 본 클래식 공연장이 그렇게 느껴졌다. 조명이 꺼지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무대에 연주자가 등장했을 때, 마음은 설렘보다도 얼어붙은 쪽에 가까웠다. 그런데 정작 공연이 시작되고 나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 좀 달랐다. 고개를 살짝 돌려 객석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 사람들이 보였다. 놀랐다. 다들 나보다 훨씬 집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졸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조는 건 큰 실례 아닐까?’ 싶었던 내 생각은 그 순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고요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졸다가 고개를 앞으로 툭 떨어트리기도 했다. 나는 금방 알게 됐다. ‘공연장에서 졸아도 괜찮다.’

클래식 공연장은 대개 조명이 어둡고, 주변 소음이 거의 없는 조용한 공간이다. 이런 환경은 우리 뇌가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이완 상태로 들어가게 만든다. 게다가 푹신한 좌석에 편안히 앉아 있으면 몸은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우리의 뇌는 무의식중에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 자체가 졸음을 부르는 요인 중 하나다. 특히 공연 직전까지 각자의 일터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온 사람들은 이미 피로가 가득한 상태다. 자리에 앉으면 금세 ‘절전모드’로 돌입할 수밖에 없다.

또 클래식 음악은 그 특성상 길고 반복이 많다. 반복되는 선율과 리듬은 점점 듣는 이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의 흐름이 점차 몸에 스며든다. 어느새 긴장은 풀리고, 정신은 조금 멍해진다. 이런 과정이 때로는 명상이나 휴식과 비슷한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때 졸음이 몰려오는 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음악에 반응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니 졸아도 괜찮다. 중요한 점은, 졸다가 깨어나도 음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마치 흐르는 강물이나 파도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잠시 눈을 감아 한 부분을 놓친다 해도 상관없다. 굳이 뒤돌아 가서 놓친 부분을 쫓을 필요도 없다. 음악은 결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야 할 산문이 아니다. 한 편의 시에 가깝다. 예를 들어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을 듣는다고 해보자. 그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선율 속에서 잠시 졸다 일어나도, 여전히 음악은 아름답게 흐르고, 달빛은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놓친 순간들이 무색할 만큼, 그 아름다운 소리는 언제나 우리를 감싸며, 우리는 다시 그 안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이렇게 생각해도 좋겠다. 클래식 음악은 본래 일상 속 음악이었다. 귀족들의 파티에서 흘러나오기도 했고, 사람들이 춤추던 무도회의 반주가 되기도 했다. 어느 집 안에선 가족들이 모여 음악을 즐겼고, 거리의 광장에서는 악사들이 연주했다. 꼭 꼿꼿이 앉아서 듣는 것만이 ‘제대로’ 듣는 방식은 아니었다. 음악은 늘 삶 속에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다. 오늘날의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다 같이 듣는 공연장인 만큼 좀 더 형식이 갖춰졌을 뿐, 음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잠시 졸았다가 눈을 떠도 괜찮다. 민망해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마음이 갈 때 음악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어떤 피아니스트는 공연 중 관객이 조용히 잠든 모습을 보면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만큼 음악이 편안하게 들렸다는 뜻일 것이다.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클래식 공연장은 시험장이 아니다. 어떤 날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날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해도 괜찮다. 마치 해변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는 시간처럼 말이다. 하나하나의 물결을 따라가도 좋지만, 먼바다를 그냥 멍하니 바라만 봐도 즐겁다. 그러다 문득 파도 소리에 마음이 젖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처럼, 음악도 어느 틈에 당신 마음에 닿게 된다. 당신이 눈을 감고 있든, 잠시 딴생각을 하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당신의 마음을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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