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반년 동안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 건 부쩍 홀쭉해진 장바구니다. 특히 라면 빵 햄버거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맥주 냉동식품 등 가공식품의 경우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어렵다. 외식물가도 덩달아 뛰면서 집에서 해 먹기도, 배달시키거나 나가서 먹기도 부담스러워졌다. 그동안 정부 압박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온 식품·외식업체들이 계엄·탄핵 정국의 정치적 공백을 틈타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53개 품목(72%)의 소비자물가지수가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해 11월보다 상승했다. 반년 새 5% 넘게 오른 품목이 초콜릿 커피 양념소스 식초 젓갈 빵 햄 등 19개에 이른다. 1년도 안 돼 두 차례 이상 가격을 올린 업체들도 있다. 업체들은 원-달러 환율 급등과 원재료 비용 상승 등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환율과 원재료값이 안정을 찾은 뒤에도 가격 인상은 그치지 않았다. 커피믹스 제품은 대선 나흘 전 기습 인상에 합류해 막차를 탔다.
▷이 같은 가격 인상 러시는 2년 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서슬 퍼런 윤석열 정부 초기였던 2023년 상반기에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 술값과 라면값을 압박하자 주류업체는 인상 계획을 접었고, 라면업체들은 가격을 낮췄다. 정부는 ‘빵 과장’ ‘라면 사무관’ 식으로 품목별 물가 담당자를 지정해 밀착 관리에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담합 조사를 명목으로 업체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가격 통제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올해 들어 정부가 업체들을 만나 인상 자제를 요청했지만 말발이 먹히지 않았다. 2년 전 눌렀던 주류, 라면 가격은 다시 튀어 올랐다.
▷식품·외식업체들이 정치적 상황을 보며 인상 시점을 저울질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 릴레이가 이어졌고, 당시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예년의 두 배 수준인 7.5%나 뛰었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눈치를 보던 기업들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치킨, 버거 가격 등을 올렸다. 2022년 대선 전에도 2021년 하반기부터 식품업체들의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업계 안팎에선 당분간 식품·외식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올릴 기업은 다 올린 데다 새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임기 초반 민생 회복과 물가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임 정부가 하던 식으로 가격이 오른 품목을 쫓아다니며 누르는 ‘두더지 잡기’ 식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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