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준기술자 차이는 ‘한 끗’에서 나온다[2030세상/배윤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1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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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배윤슬 도배사·‘청년 도배사 이야기’ 저자
도배사들의 실력과 수준을 분별하는 등급이나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도배 기술에 대한 공식적인 등급 제도는 없지만 현장에서는 실력에 따라 보조, 준기술자, 기술자로 나누고 이에 맞는 일당을 책정한다.

‘보조’는 이제 막 도배를 시작해 모든 것을 배워 가야 하는 상태다. 도배와 관련한 사소한 동작부터 시작해 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줘야 한다. 심지어 벽지처럼 부피가 큰 쓰레기를 치우는 요령도 부족해 가르쳐줘야 된다. 반대로 ‘기술자’는 모든 과정을 문제없이 능숙하게 해내며 누구와도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단계다. 보조와 기술자 사이에 있는 ‘준기술자’는 거의 모든 작업을 해낼 수 있고, 단계에 맞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준기술자와 기술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도배사가 도배사를 볼 때 기술자인지 아직은 준기술자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만 그 차이를 말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모든 작업을 일정 속도 이상으로 한다고 모두가 기술자는 아니다. 준기술자도 속도를 빠르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모서리가 겹쳐 있거나 곡선이 많은 형태처럼 까다로운 부분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기술자라고 하기에도 모호하다. 수십 년 경력자도 처음 보는 낯선 구조에서 도배를 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이다.

내가 관찰한 준기술자와 기술자의 차이는 ‘한 끗’에서 나온다. 도배는 1mm의 차이로도 완성도가 달라지는 섬세한 작업이라 이런 작은 차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는 눈이 필요하다. 어떤 구조에서도 깔끔하게 마감할 수 있는 숙련된 손기술이 있어야 하고, 벽지 속 아주 작은 이물질도 놓치지 않고 제거하는 예민함도 필수다. 처음부터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지구력과 내가 맡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작업하는 책임감도 따라야 한다. 보조나 준기술자도 최선을 다하지만 이런 사소해 보이는 한 끗 차이가 기술자를 만드는 것 같다.

많은 도배사들이 보조에서 준기술자가 되지만 준기술자에서 기술자가 되지는 못한다. 모르는 기술을 처음 배울 때는 열정이 넘치고 재미도 느끼지만, 그 기술을 조금씩 다듬어 가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반복 작업으로 인한 지루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더 배워야 한다는 겸손함과 똑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는 숙련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자란 어쩌면 단순히 기술을 습득해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인내의 시간을 견뎌온 사람이 아닐까.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 숙련자가 돼 있다면 그 사람이 가진 능력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들을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기술자였지만, 최근 일반 가정집이나 상가를 도배하게 되면서 다시 준기술자의 위치로 내려왔다. 필요한 기술이 달라서 새롭게 배워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보는 눈이 부족해서, 손기술이 완전하지 못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 생기고 놓치는 것들이 많다. 언젠가 그 한 끗을 채워서 기술자가 되는 날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버텨 보려 한다.

#도배사#기술자#준기술자#보조#도배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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