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을 살리는 로드 히어로] 동아일보-채널A 2025 교통안전 캠페인
〈5〉 배달 라이더의 위험한 질주
횡단보도 신호 위반-인도 위 주행 등… 경찰 단속 90분간 운전자 6명 붙잡혀
“도주해도 사고 우려에 추격 어려워”… 뒷번호판 단속 장비 전국 561개뿐
경기 252대-제주 1대 지역 편차 커… 전문가들 “2500대는 있어야 효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 배달 오토바이가 주행 방향 화살표를 무시하고 역주행하고 있다. 동아일보DB
9일 오전 경기 화성시 반송동 번화가의 한 사거리. 빠른 속도로 달려온 배달 오토바이가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한 뒤 지나갔다. 잠시 뒤에는 다른 오토바이가 차도가 아니라 사람이 다니는 인도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취재팀과 함께 현장을 주시한 화성동탄경찰서 차길영 교통안전계장은 “점심시간마다 아찔한 질주가 벌어진다. 경찰 단속을 피해 도망가기 일쑤”라며 혀를 찼다.
최근 배달앱 이용 급증, 이에 따른 배달 오토바이 증가가 각종 법규 위반과 사고로 이어진다는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취재팀은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 반송동 일대 번화가 및 학원가를 경찰과 함께 돌며 이륜차 법규 위반 단속 현장을 지켜봤다.
● 신호 위반, 인도 질주… 평균 15분마다 위반 적발
경찰이 단속을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한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 배달원이 몰던 오토바이가 신호를 위반해 붙잡혔다. 그는 하마터면 도로를 건너던 행인과 부딪칠 뻔했다. 오전 11시 50분경에는 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신호를 위반하다가 경찰을 보곤 바로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어 도망갔다. 차 계장은 “오토바이가 단속을 피해 도망가면 잡기 쉽지 않다. 쫓아가며 경고 방송을 한다고 스스로 서는 경우도 드물다”고 말했다. 경찰이 무리하게 추격하다간 오토바이가 질주하며 시민들을 들이받아 인명 피해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9일 오전 경기 화성시에서 교통경찰이 신호를 위반한 오토바이 운전자를 단속하고 있다. 화성=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차한 차량들을 피해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 위에 정차한 이륜차도 많았다. 이들은 신호가 바뀌자마자 총알같이 튀어 나가며 위험한 상황을 만들었다. 내리막길을 감속 없이 내려와 앞서가던 자동차와 부딪칠 뻔한 오토바이도 있었다. 이날 1시간 반 동안 교통법규 위반으로 붙잡힌 배달 오토바이는 총 6대였다. 15분마다 1대씩 잡힌 셈이다.
이륜차 사고는 승용차 사고보다 사망률이 높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률은 2.4%였다. 사고 100건당 사망자 2.4명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는 승용차(1.0%)의 2.4배다. 정미숙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육운영처 차장은 “이륜차 특성상 운전자가 외부에 노출돼 사고 시 신체 손상이 심각하다”며 “충돌 이후 이륜차가 전도되면서 운전자가 도로로 튕겨 나와 2차 사고가 발생해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5년간 이륜차 사고는 총 9만2000건 이상 발생했고 2221명이 숨졌다.
특히 오토바이 배달원이 숨지는 사고가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지난해 이륜차 사고로 숨진 361명 중 54명(15%)은 배달 이륜차 운전자였다. 주재홍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위원은 “오토바이 배달원들의 경우 주문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보며 운전하는 경우가 많다”며 “빨리 배달하기 위해 과속, 신호 위반을 일삼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도로교통공단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이륜차 교통사고 중 ‘안전 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사고가 4만8262건(52.5%)으로 절반 이상이다. 전방 주시 소홀이나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신호 위반(20.6%), 안전거리 미확보(6.8%) 등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었다.
● 뒷번호판 단속 장비 수 늘려야
문제는 승용차에 비해 이륜차 단속이 어렵다는 점이다. 이륜차는 전면 번호판(앞번호판)이 없기 때문에 기존 무인 단속 장비로 단속하기 어렵다. 이에 경찰청은 2023년부터 후면 번호판(뒷번호판) 촬영 기능이 있는 단속 장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륜차는 뒷번호판을 찍을 수 있는 후면 무인 단속 장비로만 단속할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후면 무인 단속 장비 78대를 분석한 결과, 설치 장소에서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설치 전보다 50%가량 감소했다. 유상용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는 마땅한 무인 단속 장비가 없어 ‘어차피 안 걸린다’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오토바이도 단속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 기준 전면 번호판을 단속할 수 있는 무인 장비는 전국에 2만8000여 개가 있다. 하지만 후면 단속 장비는 561개뿐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설치하다 보니 지역마다 편차도 심하다. 경기 252대, 서울 38대, 인천 27대 등 수도권에는 비교적 많지만 제주는 1대, 세종은 2대뿐이다. 이 장비로는 그 많은 배달 오토바이를 단속하기 역부족이다. 유 책임연구원은 “이륜차 수를 감안해 단속 효과를 보려면 지금의 5배인 2500여 대까지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해 설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달 말부터 앞번호판 부착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앞에서도 이륜차 번호를 알 수 있게 스티커 형식의 번호판을 부착하는 것이다. 다만 스티커 형식은 왜곡이 심해 무인 단속에는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번호판을 통해 육안 식별이 쉽게 되도록 함으로써 불법 행위를 방지하는, 이른바 ‘명찰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에 설치된 후면 무인단속 장비. 오토바이는 앞번호판이 없어 이 장비로만 무인 단속을 할 수 있다. 화성=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해 불법 개조(튜닝)와 번호판 훼손 등으로 적발된 이륜차가 2900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부터 ‘이륜차 안전 검사 제도’를 시행해 불법 튜닝을 방지하고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12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륜차 안전 단속 적발 건수는 총 4130건이었다. 이 중 등화(조명) 훼손 등 안전기준 위반이 2590건, 불법 튜닝이 1206건, 등록번호판 훼손 등 기타 위반이 334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조명 관련 위반 사례는 3207건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했다. 주로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불법 설치하거나, 기존 조명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였다. 등화 장치를 임의로 바꿀 경우 현행법상 임시 검사 명령이 내려질 수 있으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불법 튜닝된 이륜차는 사고 위험성을 높인다. 특히 기준을 벗어난 조명이 마주 오는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번호판을 훼손하면 교통사고 후 신원 확인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도난 차량이나 범죄용 차량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영재 한국교통안전공단 튜닝안전기술원 차장은 “이륜차 불법 튜닝은 도로 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만들어내며,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까지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올해 4월부터 이륜차에 대한 정기 검사를 의무화했다. 기존에 배출가스 중심으로만 관리되던 이륜차에 대해 구조·장치 상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제도가 새로 도입됐다. 개조 승인 차량은 ‘튜닝 검사’, 안전기준에 부적합한 차량은 ‘임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정기 검사 대상 이륜차는 약 20만4150대로 추산되며, 5월 말 기준 약 1만6425대가 검사를 마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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