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퇴직연금이 국내에 도입된 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퇴직연금의 적립금 규모는 400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기업들의 퇴직연금 제도가 정착하면서 직장인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퇴직금이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떻게 다룰 수도 없었던 자산이라면, 퇴직연금은 가시적인 자산이자 스스로 운용, 관리할 수 있는 자산이다. 이제 출퇴근 길에 스마트폰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을 확인하고, 일과 중에도 짬을 내 적립금의 투자처를 바꾸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제 ‘퇴직연금은 나의 돈이고 은퇴 이후 생활의 밑천’이라고 생각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인 세상이 됐다. 이 말은 적립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DC형 가입자는 퇴직연금 적립금을 스스로 운용해야 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 어떤 금융상품에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투자해야 할까.
● 연금 포트폴리오 추천 서비스
퇴직연금은 투자 기간이 긴 편인데, 그동안의 연구에서 장기 투자에서는 종목 선택이나 마켓 타이밍보다 ‘자산배분’이 중요하다는 점이 여러 차례 밝혀진 바 있다. 1974년부터 1983년까지 미국의 91개 대형 연기금의 운용 성과를 분석한 결과, 투자 성과의 95.6%가 자산배분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경험도, 역량도, 시간도 많지 않은 근로자에게 자산배분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액자산가는 금융사의 자산관리 매니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평범한 퇴직연금 가입자가 이런 기회를 갖기는 쉽지 않다. 이에 일부 금융사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 가입자들에게 ‘포트폴리오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연금 가입자가 포트폴리오 추천 서비스를 구독하면, 금융사는 가입자의 투자 성향을 고려해 맞춤 포트폴리오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수수료가 없거나 있더라도 크지 않으며, 가입금액 제한도 없거나 작아서 연금 가입자가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점은 금융사는 포트폴리오를 추천만 할 뿐 실행 여부는 연금 가입자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 자문 넘어 운용 서비스도 있어
연금 가입자가 포트폴리오 추천을 받는 걸 넘어 금융사에 실행까지 맡기고 싶다면 ‘랩어카운트’를 이용하면 된다. 랩어카운트란 여러 투자 자산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투자자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계좌 관리를 일임하면, 금융사의 전문가가 자금을 대신 운용하는 구조인 것이다.
일단 랩어카운트에 가입한 이후에 연금 가입자가 신경 쓸 사항은 많지 않다. 포트폴리오 구축부터 재조정(리밸런싱)까지 모든 것을 매니저가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할 일은 자금을 추가로 넣거나 운용 성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해지하는 게 전부다. 랩어카운트는 포트폴리오의 운용 현황을 공개하고 있어 가입자가 언제든지 확인 가능하다.
랩어카운트는 퇴직연금보다 개인연금에서 보다 활성화돼 있다. 연금저축펀드에서 가입할 수 있는 개인연금랩은 올 5월 기준 4개 증권사가 판매 중이며 적립금은 2200억 원 정도 된다. 개인연금랩은 일반 랩어카운트와 달리 가입 수수료가 없고, 중도해지가 자유로운 데다 최소 가입금액 부담도 덜하다. 펀드로만 운용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 로보어드바이저 활용한 연금 운용
그동안 퇴직연금에서 랩어카운트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관련 법령에서 일임을 허용하지 않은 까닭이 크다. 하지만 지난해 말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17개 금융사가 로보어드바이저 랩 개발에 들어갔고, 올 4월에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연금 가입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는 제약이 많다. 지금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만 로보어드바이저랩에 가입할 수 있으며 DC형 가입자는 이용할 수 없다. 가입한도는 IRP 계좌당 연간 900만 원만이고 매년 900만 원씩 증액된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한도는 다음 해로 이월된다. IRP 계좌 적립금 중에서 일부만 로보어드바이저랩에 맡기고, 나머지는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다.
● 주식 비중 알아서 조절하는 TDF
퇴직연금 가입자는 연금자산 운용을 금융회사에 일임할 수 없다. 로보어드바이저랩 서비스도 IRP 가입자만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산배분을 돕는 금융상품은 없을까. 글로벌 주식, 채권에 분산투자하는 자산배분형 펀드를 이용하면 된다. 자산배분 펀드 중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가장 인기있는 상품은 ‘타깃데이트펀드(Target Date Fund)’다.
TDF가 다른 자산배분형 펀드와 다른 점은 목표 시점에 따라 주식, 채권 비중을 알아서 조정해 준다는 것이다. 목표 시점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되,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주식 비중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콘셉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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